▲ '고발'
반디/다산책방/2017 |
외국인에게는 전쟁의 위험 속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너무 태평하게 비춰진다고 한다. 휴전된 상태로 벌써 60년이 훌쩍 넘었으니, 전쟁이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 만도 하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렇게 무심한 척이라도 하면서 오늘을 살아낼 힘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
오랜 군사적 긴장감속에서 그나마 이어오던 민간 교류도 단절된 근래에는 우리와 북한사이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에게 북한은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보다 더 먼 나라이다. 그런데 기적처럼 한 권의 책이 그 먼 곳에서 우리에게 와 주었다.
북한의 소설가가 목숨을 걸고 반출시킨 원고가 2014년 어렵사리 출판되었고 올해 3월에 20개국에서 출간되었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영국판은 영국 펜(PEN)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는데...... 이 책을 읽는데 용기가 필요했다. 애써 외면하고 살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적인 일들을 직면할 용기가 부족해서다. 나의 평온한 일상에 잔잔한 파문조차 일으키고 싶지 않은 이기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나와는 상관없이 담담히, 그리고 의연히, 독재정권하에서 철저히 통제된 삶을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풀어냄으로써 북한체제의 모순을 드러낸다. 그 동안 단편적으로만 접해서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던 북한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며, 자식이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감시와 긴장감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주민들의 고통이 절실히 느껴졌다.
두 아이의 엄마로써 무엇보다 그러한 억압 속에서 자라날 아이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출신성분으로 사람을 구분 짓고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에 발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차별에 당당해질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던 평등한 사회가 또다른 계급과 차별의 사회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계급투쟁이며 인민해방인가?
공산주의와 독재정권의 모순을 스스로 증명하는 사회가 바로 북한이다. 이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식인의 고뇌와 무기력감이 전달된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절망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러한 부조리한 비극을 폭로한다. 이 책은 필사적인 구조요청의 산물이다. 우리의 관심과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작가의 외침이 있다.
우리가 지금의 정치적?경제적 발전을 이루게 된 것은 끊임없이 투쟁하며 진실을 성취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의 밑바탕에는 무수한 의로운 외침이 있었다. 우리는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호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진실의 염원은 아름다운 촛불로 승화되었고 우리는 발전할 수 있었다. 용기를 내는데 힘이 들고 시간도 걸렸지만 우리에게는 해냈다는 자신감이 있다. 이제는 한반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북한이란 실체를 마주하고 우리가 할 일을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미워도 북한 주민의 고통까지 당연시하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마저 영위하기 힘든 북한 주민의 상황을 언제까지 모른 체 할 수 있을까? 이산가족의 아픔이 그들만의 개인사인가? 왜 이렇게 서로를 적대시하며 지내야 할까? 개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 잘못은 전혀 없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조차 외면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온 구조요청에 응답이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든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책을 읽는 것뿐이라고 해도 그것부터 시작해주기를 작가는 진정으로 바라고 있을 것이다.
조호자 가양도서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