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암서원 전경 |
-철폐령도 이겨낸 유교문화 산실 돈암서원
-빼어난 건축미와 호방한 글씨체 눈길
-학문 유생들의 책 읽는 소리 들리는 듯
-백제 황산벌전투 현장 계백장군유적지
-5만 대군과 맞서 충(忠) 지킨 오천결사대
-2시간 산책하며 백제~조선 역사현장 연속
▲ 돈암서원 내 유생들이 공부했던 응도당 |
마침 황산벌전투의 충(忠)과 유교문화의 절(節)을 한번에 체험할 수 있는‘논산 솔바람길’이 연산면 수락산 일원 6㎞ 조성돼 다녀왔다.
걷기여행은 논산시 연산면 충남인터넷고 인근에 있는 돈암서원(遯巖書院)에서 시작했다.
서원(書院)은 큰 업적을 남긴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정신을 기리는 공간과 유교를 가르치고 배우는 강학공간이 한 곳에 마련된 사립 교육시설을 말한다.
‘돈암’이라는 이름은 현종원년(1660년) 임금이 직접 이름 지어 현판을 제작해 내려준 것으로 조선중기 유학자 사계 김장생(1548~1631)을 추모한 우리나라 예학의 산실이다. 고종 3년(1865년) 모든 서원을 철폐하라는 명령에도 문을 닫지 않고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일 정도로 존숭을 받던 곳이다.
▲ 논산 솔바람 산책로 모습 |
이어 사계 선생이 생전에 학문을 연구했던 강당인 양성당(養性堂)과 학문을 하는 유생들이 모여 경전의 의의를 자세히 강론하던 정의재(精義齋), 문집을 보관하던 장판각(藏板閣) 등이 위패를 모신 숭례사(崇禮祠)를 지키듯 있었다. 특히, 돈암서원 중앙에 세워진 원정비(院庭碑)가 김장생 선생의 문하생이었던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써 마음이 갔다.
▲ 계백동상 |
서원을 나와 담벼락을 따라 뒷산에 오르면 본격적인 솔바람길이 시작된다. 마을 뒷산을 오르듯 가볍게 걸을 수 있는데, 우거진 숲에 벤치에 앉아가며 쉬엄쉬엄 걸을 수 있다. 산책로는 잘 정비됐지만,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고 야생동물 흔적도 여럿 보이는 게 2~3명이 함께 걷는 게 안전할 것 같다. 멀리 탑정호의 모습도 바라보고 정자에 앉아 쉬면서 솔내음을 만끽할 수 있으며, 산책길을 40분정도 걸으니 백제군사박물관에 도착했다.
▲ 계백군사박물관 |
“660년 7월 9일(음력) 백제군과 신라군이 이곳 황산벌에서 벌인 전투로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 5만여명에 맞서 계백장군과 5000명의 결사대는 네번 싸워 이겼으나 수적 열세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백제는 황산벌전투의 패배로 멸망했지만, 이때 전사한 계백장군과 5000결사대는 충절과 호국의 표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계백장군 유적지는 백제의 유민들이 전쟁터에서 장군의 시신을 거둬 가매장했다고 하는데 주변에 충장산과 수락산이 있으며 묘소 일대 지명이 가장골이고 묘소 주변에 철제 무기가 나온 것으로 보아 계백장군묘로 추정하고 있다. 묘역 옆 계단을 오르면 말에 올라 칼을 휘두르는 계백장군의 동상과 5천 결사대의 장렬한 죽음을 묘사한 동상을 만나게 된다. 가족의 목숨을 거두고 전장에 나섰던 계백, 5만 대군과 처절히 싸웠을 5천 결사대가 가슴에 지녔을 충(忠)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 탑정호 |
관람을 끝내고 다시 솔바람길 숲길로 오르면 휴정서원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만난다. 흙길을 천천히 걸어 도착한 휴정서원 역시 학문에 매진한 학자의 덕행을 추모한 서원으로 숙종 26년(1700)에 창건돼 1919년 중건됐다.
산책길에서 마주한 영사암, 신풍리 마애불도 논산 솔바람길에서만 볼 수 있는 명소다. 솔바람길을 걸은 지 2시간여 숲길도 벗어나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탑정호를 만나 땀을 식히는 것으로 시간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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