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권변호사 활동...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
18대 대선 아픔 딛고 압도적 지지로 당선... 광화문에서 국민과 막걸리 한잔하고파
1953년 1월 24일(음력 1952년 12월)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故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 태어난 2남 3녀 중 둘째이자 장남이다.
부산남항초등학교와 경남중, 경남고와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남항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난 때문에 학교 근처에 있는 신선성당에서 정기적으로 배급을 받았다.
처음에 대학에 못 들어갔다. 하지만, 수재라는 사실에 경희대 설립자이자 당시 총장이었던 조영식 박사가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면서 재수 후 1972년 경희대 법대에 수석 입학했다.
대학시절,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항거하다가 서대문 구치소에 투옥됐고 대학에서는 제적당했다. 출소 후에는 군에 강제징집됐다가 제대 후에 전두환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청량리 구치소에 투옥됐다.
옥중에서 사법시험(22회)에 합격하면서 석방됐다. 사법연수원 시험성적이 차석이었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거부됐다.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하며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맡았다가 건강이 악화돼 1년만에 그만뒀다. 하지만, 네팔 산행 도중 노 대통령의 탄핵소식을 듣고 곧바로 귀국해 변호인단을 꾸렸다. 탄핵기각 판결을 받은 후 2005년부터 대통령 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노 대통령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노 대통령 서거 이후 장례를 책임졌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2012년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됐고, 6월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역대 대선 낙선자 중 가장 많은 1469만 2632표(48.0%)를 얻었지만, 떨어졌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선출됐고, 2017년 3월 동영상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이제 정권교체의 첫발을 내딛는다”라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5월 9일 치러진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20%에 가까운 격차를 벌리며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됐다.
문 당선자는 생애 가장 기뻤던 일로 사법시험 합격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꼽았다. 가장 아끼는 물건도 법무법인 부산을 개업할 때 노 대통령이 개업선물로 보내준 괘종시계일 정도다.
좋아하는 한자성어는 ‘재조산하’(再造山河)다. 임진왜란 당시 실의에 빠져 있던 서애 류성룡에게 충무공 이순신이 적어 준 글로, ‘나라를 다시 만들다’라는 뜻이다.
문 당선자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광화문에서 국민과 막걸리 한 잔 하고, 주말에는 아내와 같이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한편, 문 당선인은 손아랫 동서가 대전에 살고 있다. 당사자는 건양대 스포츠의학과장인 김한수 교수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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