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평화와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을 살다 간 늙은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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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평화와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을 살다 간 늙은 전사

  • 승인 2017-05-07 14:03
  • 신문게재 2017-05-09 20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권술룡 국제NGO 생명누리공동체 대표 별세

세상의 평화와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늙은 전사로 살았던 권술룡 국제NGO 생명누리공동체 대표가 지난 4일 오후 1시3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40년생으로 향년 78세.

고 권술룡 대표는 생명평화해결사순례단장과 대동복지관장, 대전중구자활후견기관장, 대전노숙자상담지원센터장, 한밭레츠 대표,샨티학교 교장, 지구촌인디고청소년여행학교장, 대전홈리스지원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의 빈소는 세종은하수공원, 발인은 6일 오전 10시에 이뤄졌고, 장지는 세종은하수공원 봉안당에 마련됐다. 유족으로 부인과 장남 권지훈 마을과복지연구소 소장, 차남 권지성 침례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딸 권지명씨 등 2남 1녀가 있다.

고인은 지난 2009년 중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평화의 마을에서 운영하던 대동복지관장 직을 사임하고 순례길을 떠난다”며 “천막촌에서 호떡장수로 살다가 주위의 선생님과 선배, 친구들 도움을 입어 아동시설 총무로 10년, 복지관장으로 모두 20여년, ‘부귀영화’를 누리며 원없이 잘살았다”고 회고했었다.

고인은 공동단식과 세계인도생태공동체순례, 한반도 순례 등을 이끌어온 지도자로, 세계생태공동체순례로 맺어진 지인들과 함께 풍찬노숙, 탁발, 5년을 길위로 걸은 생명평화결사에 이어, 우리쌀지키기 100인 105일 걷기 등을 통해 살아온 길에 대한 뼈 아픈 깊은 성찰과 생태적인 생체실험을 했던 모험가이자 탐험가였다.

고인은 살아생전 허술한 집이 많은 대동 지역에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벌여 1000여 채 이상의 집을 수리하거나 새로 짓는 사업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정작 본인은 집 없이 전세로 살아 왔다.

권술룡 관장은 흰 머리에 흰 수염이 트레이드마크였다. 그의 까페(cafe.daum.net/kwonsay)에 들어가면 권 관장의 사진 옆으로 코피아난, 톨스토이, 헤밍웨이,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 모두 수염 달고 있는 인물들이 있을 정도로 그는 ‘전국/국제 수염기르기 운동’을 펼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메마른 세상에 살면서 재미를 곁들여 수염을 기르면 남성들의 외모가 훨씬 성숙해 보일 것이고, 그 외모(그릇)에 걸맞게 내면도 성숙해진다는 것. 또 젊은 층이나 장년층 중에 의외로 수염을 기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눈총 때문에 주저하는 현실에서 수염기르기 운동이 비빌 언덕이 되어 주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고 했다. 고인은 수염은 기르는 게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하는 아주 자연스럽고 생태영성적인 운동의 하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평화의 마을 아동복지센터(구 대전애육원) 총무로 있던 시절부터 <평화의 마을> 회보를 발간해 온 고인은 늙은 전사와 권총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늙은 전사는 ‘늙은 병사의 노래’에서 따온 것인데, 현실이 전쟁터 같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붙인 것이다. 권총은 대전애육원 총무시절 초등학생 한 아이가 붙여준 별명이다. 고인은 부모와 떨어져 고아원 시설에 있던 아이들에게 좀 더 사랑과 연민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음을 반성하는 계기가 된 그 별칭을 소중하게 사용했었다.

1997년 대동사회복지관 관장을 맡게 되면서부터 고인은 평면적인 제도권 속의 사회복지시설 기관을 자신의 오랜 꿈인 공동체와 연결 지으면서 낮고 작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전해주는 활동을 해왔다.

힘겨운 가난의 실상을 몸소 경험해 봐서 대동 주민들의 가난한 삶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고인은 거칠고 가파른 골목을 찾아다니며 마을 주민들의 애환을 들었고, 고민과 걱정거리를 해결해 주기 위해 발로 뛰었다. 집 없이 떠돈 아픔을 경험 해 봤던 고인은 놀라운 실천력으로 주민들의 무너져가는 집을 수리하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나중에는 실직한 건설 노동자같은 빈민들도 찾아와 힘을 보태주었다. 그 힘이 영세 가구 1000여 채를 수리하게 만들었고, 결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집들을 새로 짓거나 수리해주는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도 했다.

한때 사업 실패로 며칠간이지만 노숙인 생활을 한 적이 있어 길에서 하루하루를 지내야 하는 참담함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던 고인은 대전역 주위에 노숙인들의 쉼터를 만들어 그들의 자활활동을 돕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 노숙인에게 밥이나 잠자리 제공뿐 아니라 일거리를 주기 위해 복지관을 통해 일거리를 만들어 알선해주었고, 밤 농장을 소개받아 밤농사를 거들게 했다. 또 매주 월요문화마당을 개최해 노숙인들에게 정신적인 자립의 중요성을 깨우쳤다.

고인은 세계생태공동체순례단 대표로 있으면서 인도 공동체, 네팔의 카트만두나 히말라야, 쿠바, 북경, 몽골, 러시아 바이칼호, 독일, 동유럽,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지를 다녀왔다. 매번 20~30여 명 안팎의 사람들을 모아 다녀온 생태공동체 순례후엔 그곳의 앞서간 공동체를 학습한대로, 우리 실정에 맞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구상의 밑그림을 그렸다.

고인은 남인도의 원주민 농촌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명누리 공동체’ 를 돕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그곳과 연결해 주기도 했다.

또 쿠바의 녹색도시를 보고 와서 고인은 ‘고구마로 도시를 경작한다’는 모토아래 도시의 유휴지를 찾아 허락을 받고 고구마 농사를 지었다. 황량한 빈터나 잡초로 무성한 곳을 계간해 일거리 제공도 하고, 농작물 수익도 얻게 하고, 아이들의 학습체험장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고인은 또 평화의 마을 영성공동단식을 평생 이끌어오면서 매년 새해맞이 공동단식과 지구의 날 주간 지구촌사이버공동단식, 여름가족 캠프 등을 통해 생명, 평화, 생태, 영성을 깨우치는 소중한 해방구 역할을 해왔다.

고인은 평생 소록도마을 봉사를 비롯해 청소년 조국 모험기행을 통해 아이들에게 10여일 정도 공동생활을 하게 한 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는 법을 가르쳤다.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난 고인의 아버지는 목선 선주이자 어부였는데 일본 북해도로 징용에 끌려가기도 하고, 오징어잡이를 나갔다가 태풍을 만나 표류를 하기도 하는 바람에 식구들은 셋집을 전전하면서 동해안을 떠돌며 살아나가야 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권유로 중학생 때부터 교회에 출석하게 됐고, 18세에 함석헌 선생이 거주하던 천안씨알마을에서 1년간 생활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와 함께 강원도 평창 산골로 들어가 화전민이 버리고 간 밭을 개간하며 지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숲 속에서의 생활을 알게 된 고인은 가족이 있는 고성의 대진에서 고구마 농사를 지어 성공적인 수확을 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뜻이 맞는 지인들과 진부령 골짜기로 들어가 ‘안반덕 씨알개척농장’을 만들기 위해 화전민이 버리고 간 땅을 개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개간을 하기 위해 잠시 불을 붙여둔 것이 걷잡을 수 없는 산불로 번져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됐다. 그렇지만 함석헌 선생의 주선으로 알게 된 판사가 현장검증을 해 보니, 어느새 산불이 난 자리가 새로운 싹들로 울창해져 있었다. 그 뒤 군대에 갔다가 제대하고 나서는 남한 최북단 마을에서 야학을 열면서 교회 새벽종이 울릴 때까지 흙집의 초벽을 바르며 밤새 일한 경험도 있다. 그 뒤 사업을 하다 망하고 노숙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고인은 다시 생업을 위해 호떡장수 생활을 하던 중 평화의 마을 대전애육원에 들어가게 됐다.

고인의 오랜 꿈은 씨알 평화의 마을 아쉬람이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자립하는 공동체 생활을 꿈 꿔 왔고, 고인의 삶의 궤적도 그 목표를 향해 충실히 밟아 온 순례의 길이었다. 못 말릴 즉흥성과 단순 명료한 결단력을 지녔던 고인은 시도해 보면 안 될 것이 없고 시작한 것은 계속 개선 발전시켜 나가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다.

고인은 단식과 영성 치유를 함께 한 순례자로도 유명했다. 강정마을에 머무는 기간에도 그와 단식을 함께 하며 영적 순례를 떠나고자 했던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다. 젊은 시절 달동네의 복지관과 지역자활센터, 노숙자센터 등에서 사회복지운동을 한 고인은 늙은 전사, 황혼의 전사로 불리며 사회복지계 후배들의 대부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주인공이다.

생산 활동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노동해서 돈 버는 일만은 아니고 영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엄청난 생산 활동이라고 했던 고인은 평생 사회복지를 몸으로 실천하며 살다가 아름다운 별이 되어 떠났다.

한성일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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