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도시 세종에선 정부부처별 블랙리스트 나돌 정도
#대전 모 구청에 근무하는 공무원 A씨는 최근까지 ‘민원인’ 때문에 수개월간 골치를 썩었다. 민원인이 청와대를 비롯해 국무총리실,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구청의 자신이 사는 아파트와 관련한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했기 때문이다.
자주 있는 일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이 민원인은 독특했다. 여러 상급기관은 물론, 구청 내에서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부서 곳곳은 물론, 홈페이지 등에 구청의 ‘부실한 인ㆍ허가와 감독, 층간소음’을 주장하는 글을 도배할 정도였다.
구청에서는 이미 ‘○○청 꼴통’으로 불릴 만큼 유명인이 된 이 민원인은 다름 아닌 정부대전청사 입주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무관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새벽에 윗집에서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유까지 들었다”며 “상급기관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1000건 가까이 글을 올리면서 괴롭혔다”고 말했다.
‘공무원 도시’라고 불리는 대전과 세종시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함께 국가의 녹(祿)을 먹는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고통을 알기에 서로 이해와 배려가 있을 법도 한데, 오히려 ‘아는 만큼, 더 잘’ 괴롭히고 있는 셈이다.
대전시청에 접수된 민원은 2016년 한 해 7700여건 수준이다.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배달된 진정과 건의, 질의, 이의제기 등만 500건이 넘는다. 본인 인증절차를 거쳐 홈페이지에 제기된 민원만 7200여건에 달했다.
직접적으로 시민을 접촉하는 자치구는 더 심하다.
자치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진정과 건의, 질의, 이의제기 등은 연간 평균 200건을 넘는다. 가장 많은 건 홈페이지에 제기한 민원으로, 유성구청만 작년 한 해 2만건을 넘어섰다.
민원인 대부분은 1∼2회 정도 불만을 제기한다. 상식선이라고 할 수 있다. 85% 정도는 교통 등 일상생활과 관련한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된다는 게 시청 종합민원실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억지로 해달라고 떼쓰는’ 악성민원도 적지 않다.
민원실 관계자는 “감사실이나 주택정책과 등에 비슷한 내용을 조금씩 바꿔 1년에 100회 정도 민원을 내는 사람이 있는데, 악성 중의 악성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악성’ 민원이 활개치는 대표적인 곳은 세종시 신도시인 행정중심복합도시다.
공무원 도시인 행복도시는 아파트 민원(하자 및 관리)으로 유명하다.
세종시가 출범한 2012년 7월부터 2013년까지는 관련 민원이 66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2014년 136건으로 늘더니 2015년엔 351건으로 급증했다. 2016년 1분기에만 111건의 민원이 발생하는 등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행복청과 세종시 등에 민원해결 전담부서와 체계가 생길 정도였다.
민원을 제기한 대부분은 공무원과 그의 가족으로 보면 된다는 게 행복청과 세종시 측의 얘기다.
시의 한 공무원은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에서 장비를 가져와 직접 조사해 만든 자료까지 제출하며 민원의 정당성을 주장한 공공기관 직원도 있었다”고 했다.
정부부처 관계자는 “짧은 기간에 많이 입주하다 보니 불만이 쏟아졌다”며 “공무원인지 의심할 정도로 매너가 없는 이들도 많아 한때 부처별로 악성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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