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고요함을 떠올리면 눈을 살짝 감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불상의 표정이 함께 연상된다. 석굴암의 본존불은 얼마나 신비롭던가. 마주보면 가슴 속에 고요한 파문이 번진다. 품고 온 번뇌가 씻겨나가고 맑은 물처럼 정화되는 기분이다.
천불천탑과 와불로 유명한 화순 운주사의 어느 석불은 눈과 입이 없다. 그 옆의 석불은 입 옆이 크게 부서져 삐뚤게 웃는듯한데 이마 위로는 부서졌는지 아무것도 없다. 불에 탄 것처럼 새까매서 어떤 얼굴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데 코만 유독 높은 것도 있다. 그들은 나름 합장한 것처럼 두 손을 모으거나 배꼽 아래에 두 손바닥을 겹친 선정인을 취했다. 울퉁불퉁, 돌 그대로의 피부를 가진 석불도 있다. 한 남자가 석불마다 합장을 하며 지나갔다.
기괴한 풍경이었다. 다른 사찰의 석불처럼 우러러봐야 할 것 같은 경외감이 이곳의 석불에는 없다. 겨우 석불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얼굴들에서 세상의 풍파를 함께 견뎌줄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운주사를 한자로 풀어보면 구름 雲에 살 住를 쓴다. 구름이 머물고 사는 곳. 예전에는 기둥 柱를 써서 천개의 탑으로 돛을 삼고, 천개의 불상은 사공이 되어 우리나라를 동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 담겼다고도 전해진다.
운주사 입구의 연장바위는 창건 설화와 관련이 있다. 천 불과 천 탑을 하루 만에 세우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하여 석공들과 동자승이 만들고 있었는데, 일하기 싫었던 동자승이 일부러 닭 울음소리를 내 새벽이 온 것처럼 꾸몄다고 한다. 정말로 날이 샌 줄 알고 떠난 석공들이 연장을 올려두고 간 바위가 연장바위다.
석공들이 작업했던 불상 중에는 와불도 있었다. 정식 명칭으로 와형석조여래불이라고 불리는 와불 역시 도선국사가 천탑을 세우고 마지막에 일으키려 했지만 새벽닭이 울어 실패했다고 한다. 12.7m와 10.3m. 얼굴에 비해서 지나치게 어깨가 좁고, 다리부분은 넓은데다 다른 석불들처럼 납작해서 일으켜도 세워두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운 곁에서 사람들이 도시락을 먹는다. 세상 어느 불상이 허락할까 싶은 평화로움이다.
설화는 설화일 뿐, 운주사는 지금까지 네 차례 발굴조사를 했지만 정확히 누가, 언제, 왜 지었는지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1530년에 편찬된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석불, 석탑이 각 1천구씩 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봤을 때 조선 초기까지는 상당한 수가 실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석불 100여구와 석탑 21기가 전부. 세상이 내내 어지러웠으니 사라진 수백구의 석불은 민중들이 집 짓고 빨래하는데 가져다 썼을 것이다. 뭉툭한 얼굴이 사람 손을 타고 더 닳았을 텐데 다시 찾을 수는 없겠다. 아무말 없이 사람 사는데 제 몸 바쳤을 석불들이 더욱 보살처럼 느껴졌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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