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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판사는 도지사와 같은 마음으로, 지역주민을 돌본다는 사명감이 필요하죠.”
지난 1973년 15회 사법고시(연수원 5기)에 합격한 이후 50여 년간 법조인의 길을 걸어오며 지역 법조계의 ‘산증인’으로 손꼽히는 이관형 변호사는 이같이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1978년 대전지역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하며 22년간 공직에 몸을 담고, 99년 변호사 개업이후 지역의 크고작은 사건들을 다뤄온 그에게 지역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지역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의 영향력도 대단하다.
“공주에서 지원장을 84년부터 2년간 했다. 구속자가 한명도 없으면 경찰서 꼭대기에 백기를 꼽던 시절 고향에서 재판장을 지냈다.”
그는 “과거 지역 법관은 지원을 받았고, 지금과의 다른 의미였다. 지역에서 봉사를 꼭 하고 싶어 서울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5년간 근무하다 고향으로 지원해 지역 법관을 하게됐다”며 “과거 독재정권 시절 판사를 지내면서 도지사와 같은 마음으로 공직에 임했다”고 회상했다.
홍선기 전 대전시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을 때다. 이 변호사는 선거비용 초과로 자칫 시장직을 박탈할 수 있었던 사건에 대해 시장직을 유지하는 형을 선고한다.
일각에서는 지역정당 눈치를 본 선고라며 비난을 하기도 했으나, 이 변호사는 “자격박탈보다 직을 유지시키는데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하다. 선거비용에 1000원을 쓴 사람은 처벌되지 않았으나 100원을 쓴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았다고 본다”며 “지역의 특수성을 잘 아는 지역법관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판결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양형보다 ‘다소 낮은’ 형을 선고하는 지론을 가졌던 그는 성범죄와 강간범 등에 대해서는 엄벌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성범죄 처벌 수위가 낮다고 생각했던 이변호사는 초등학교 앞에서 상습적으로 만원짜리로 어린 학생들을 유혹해 성범죄를 하고 사진을 찍었던 성 범죄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바 있다.
그는 “전형적인 성범죄자들에게 무거운 형을 선고함으로써 성범죄가 큰 죄임을 인식시키고 싶었다”고 말한다.
1989년 대법원 근무 시절 판결했던 직접적인 업무 연관성이 아닌 간접적인 업무 연관성도 산재로 인정한 판결도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변호사는 판사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지역의 어려운 이들을 위한 변호를 맡으며 변호사로서의 명성도 높다.
70을 바라보는 현재는 변호사이자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으로 지역을 위한 봉사도 하고 있다.
그는 “조금 있으면 법조계 50년을 바라보게 된다. 지역 법조계에서 어른 역할을 하고 싶다”며 “후배들이 지방자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돕고 지역정치의 질을 높일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주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이관형 변호사는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전지법 공주지원, 대전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으며, 현재 법무법인 내일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김민영 기자 mi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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