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이 없는 아파트... 소통과 화합의 길로 해결
▲ 둔산 일대의 아파트. 사진=임병안 기자 |
둔산동 모 아파트에 사는 A 변호사는 ‘햇살 좋은 날’ 걷기를 좋아한다. 가벼운 차림으로 나서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분을 가라앉는다. 아파트 내부에는 숲이 없다. 걷는 길도 좁다. 볼만한 나무는 더 없다. 특히, 30∼50m마다 신호등 앞에서 멈춰야 하는 건 정말 짜증이 난다는 게 A 변호사의 말이다.
걷거나,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멈추고 싶어하지 않는다. 계속해야 제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둔산 일대 아파트 주민 상당수는 집 주변에서 잘 걷지 않는다. 걷기의 재미를 잃게 하고, 걷기를 막아서는 것들이 많아서다.
한가람 아파트에서 목련, 크로바, 한마루, 영진로얄 아파트까지 걷다 보면 두 가지를 느낄 수 있다.
하나는 아파트와 차도 사이의 인도로 걷다가 기분이 업(UP)될 때쯤이면 신호등 앞에서 멈춰야 한다. 물론, 신호등은 4개 정도뿐이지만, 초록색 신호등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모두 감안하면 ‘운동하는 게 맞는지’라는 생각도 든다.
또 하나는 아파트 내부에 있는 인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내부라고 해도 여건이 좋은 건 아니다. 인도가 좁고 볼 것도 없다. 한 아파트를 지나면 역시나 신호등이 기다리고 있다. 옆에 있는 아파트와 자연스럽게 연결된 길이 없다. 사실 단절된 거나 다름없다.
목련아파트에 사는 한 교사는 “스포츠센터에서 운동하지, 주변을 걷거나 뛰는 사람은 많지 않고 다른 아파트에는 들어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좋은 예는 ‘최신 제품’인 세종시에 있다.
▲ 세종시 2-2생활권을 연결하는 순환산책로 |
세종시 신도시인 행정중심복합도시 2-2생활권에 조성하는 아파트는 소통과 통합으로 유명하다. 비결은 ‘순환산책로’다. 단절된 아파트단지의 경계를 넘어 생활권 전체가 하나의 마을로 연결하고 소통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길(路)이다.
이곳에 있는 11개 단지(7500여세대)를 관통하는 2.8㎞에 달하는 순환산책로는 디자인을 통일했다. 보도블록 패턴과 시설물도 마찬가지고, 산책로 곳곳에는 미술작품과 테마정원, 어린이놀이터, 바닥분수 등도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아파트’가 아니라 ‘우리 동네’를 대표하고 통합해주는 소통의 길인 셈이다.
둔산 신도시 내 아파트도 이렇게 바뀔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아파트 내에서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잔디밭과 아파트에서 가장 넓은 주차장 일부를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입주민들의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다.
다른 아파트와 연결하는 보행로를 따로 만들 가능성은 사실 낮다. 다만, 단지별 경계선을 허물고 횡단보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최정우 목원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내 집만 뜯어고친다고 가치가 올라가고 살기 좋아지는 게 아니라 ‘내 집, 우리 단지’를 열어 받아들이고 나누면 가능하다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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