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부 송익준 기자 |
얼마 전 택시를 탔다.
버스와 지하철을 주로 타지만 귀찮고 바쁠 때면 택시를 탄다.
이날은 ‘귀찮고 바쁜 날’이었다.
기사 아저씨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요새 날씨가 아주 여름이에유”, “택시가 하도 많아져서 힘들어유”
시답잖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창문을 열고 눈을 감았다.
무성의한 답을 반복하는 게 죄송해서였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광고가 이어지던 라디오에서 대선 뉴스가 나왔다.
후보의 지지율 변화, 대선 구도, 토론회 분석 등의 내용이었다.
기사 아저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손님 신문사 가시는 거 보니 기자 양반 아니에유?”
“하하, 맞습니다”
기사 아저씨는 생김새나 말투가 딱 기자인 줄 알았다며 반가워했다.
“기자면 소속 부서가 어디에유?”
“정치부입니다”
정치부 기자라는 대답에 기사 아저씨는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모 후보는 어떻느냐, 토론회는 봤느냐, 도대체 누가 되는 거냐 등 질문도 다양했다.
솔직히 귀찮았다. 은근슬쩍 답을 피하며 되물었다.
“잘 알지 못하는데요, 기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사 아저씨는 명쾌한 대답 대신 기자를 ‘디스’했다.
“아니 기자 양반이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참 희한한 노릇이네”
상처 난 자존심에 후보들을 직접 만났을 때 느낌, 기자간담회 뒷이야기 등 ‘썰’을 풀어댔다.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말도 빨라졌다.
“문재인 후보는 선한 느낌인데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다”, “안철수 후보는 똑똑한 듯한데 속을 알 수가 없다”, “홍준표 후보는 무대포인 점이 약점이자 강점이다”
기사 아저씨는 이야기마다 맞장구를 치며 공감했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는 말끝마다 꼭 물어보는 게 있었다.
“도대체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냐”는 거였다.
집착으로 느껴질 정도로 계속 물었다.
말을 돌리다 지쳐 “모 후보가 되지 않겠냐”며 넌지시 던졌다.
기사 아저씨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다시 이어진 어색한 침묵.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택시가 회사 앞에 멈춰 섰다.
잠시 말이 없던 기사 아저씨는 거스름돈을 쥐여 주며 한마디 했다.
“기자 양반, 그래도 모 후보가 되지 않겠어유?”
기자가 예측한 후보와 다른 후보였다.
긍정의 답을 바라는 눈빛이 느껴졌다.
잠깐 망설인 후 엉뚱한 답을 드렸다.
“안전운전 하세요, 감사합니다.”
참 알 수 없는 충청도 민심, 어떤 후보가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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