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숙 충남대 교수 |
15층으로 오르는 십여 초, 그 사이에 변화하는 계절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신선한 열정을 엿보았고, 그날 이후 ‘열정’이란 단어는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열정은 무엇일까.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듯 하지만 막상 질문을 대하고 보면 한 마디로 풀어내기가 녹록지 않은 단어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열정은 이러하다. 열정은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이며, 존재를 드러내는 대담한 것이다. 사랑하는 것, 슬픔과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열정의 힘이다.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하고 싶은 목표를 갖고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불가능한 몽상을 가능한 실체로 전환시키는 것도 열정의 강도에서 비롯된다. 열정은 모순되고 갈등하는 것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용광로와 같은 생성의 공간이다. 그러기에 열정을 지닌 사람은 아름답고, 그와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진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열정이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역사를 추동해 온 계기마다 정열을 간직했던 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데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살아있음의 존재를 드러낼, 온몸으로 사랑하고 몰두할 수 있는 푸른 열정을 품는 일은 얼마나 싱그러운 삶인가. 또한 격정이 파괴에 이르지 않도록 다스리는 절제는 열정을 조화와 균형으로 이끌 것이다.
열정은 또한 도전하는 의지이다. 우리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심적으로 큰 피로감에 젖어 있다. 경쟁과 비교, 성장과 성공이 주류 담론이 되어가는 신산한 현실에 상처받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열정을 담보로 횡포를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안타까울 때도 있다. 특히 젊은이들의 열정을 구실로 무급이나 저임금으로 노동을 강요하는 현실은 삶의 의욕을 좌절시키고 무력감을 갖게 한다. 젊은이들은 물론 모든 사람의 열정을 보살피고 존중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자발적 에너지와 자존감을 포기하지 않는 열정만이 삶과 현실을 바꾸고 가꿔나갈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새로운 변혁을 이루어내야 할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정의와 원칙이 공정하게 느껴지길 바라는 크고 작은 열정들이 변환의 도약대를 세워 놓았다. 이럴 때일수록 나와 세상을 향한 애정을 담은 열정이 필요하다.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열렬한 마음과 힘은 우리들을 안도와 믿음으로 향하게 한다. 그런 우리들 곁에는 두터운 껍질을 떨어내고 싹을 틔우며 꽃망울을 터트리는 꽃과 나무가 있다. 지구를 흔들 만큼의, 자신의 몇 십 배가 넘는 고통을 견디고 아름답게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들이 함께하고 있다.
강의실 밖,봄 햇살이 가장 빠르게 닿은 곳의 목련은 서너 개 꽃을 남겨두고 연둣빛 잎새를 밀어올리고 있다. 반대편 그늘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목련봉오리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서로 놓인 위치와 온도에 따라 이르거나 조금 늦을 뿐 꽃은 피어나는구나 싶다. 때때로 변함없는 자연의 순환과 찬란한 봄꽃을 보며 허탈감과 상실감이 엄습할 때도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걷기의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채 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거듭된 실패 끝에 얻은 결과는 끊이지 않은 집념의 과정이 있었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진심으로 마음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족하다. 삶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다면, 그늘의 목련처럼 언제든 생의 꽃은 피어날 것이다.
김정숙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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