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전 지역민은 하나로 원자로 내진설계 부실 의혹, 방사성폐기물 무단 투기, 파이로프로세싱 연구 등으로 원자력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태다.
돌아보면 원자력 안전 문제가 논란이 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이 항상 투명한 정보 공개와 소통을 약속해왔음에도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원자력연을 향한 불신이 자리 잡은 데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원자력 분야는 전문적인 분야라는 이유로 시민과 지자체가 감시 또는 감독할 권한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 같은 문제를 풀고자 일본 ‘원자력안전협정’ 제도가 지역사회에서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원자력안전협정이 무엇인지, 협정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협정이 대전에서 이뤄질 때 고려돼야 하는 점은 무엇인지 꼼꼼히 알아본다. <편집자 주>
▲ 이바라키현·일본원자력 연구소(JAEA) 관계들이 지난 6일 이바라키현 현지에서 대전시·한국원자력연구원·환경단체 관계자에게 '일본 원자력 안전협정' 에 대해 설명했다. |
▲원자력사업자 18개가 몰려 있는 이바라키 현(縣), 18개의 ‘원자력안전협정’을 맺다 = 대전시ㆍ원자력연 관계자와 자문위원 등은 지난 5∼8일 일본 이바라키현 내 도카이촌을 방문해 지자체와 원자력사업자 간 안전협정 체결 현황을 살폈다.
일본의 현 단위는 국내에서 시(市) 또는 도(道)규모다. 이바라키현에는 원자력발전소, 원자력연료 공장(JCO), 일본원자력연구소(JAEA) 원자력과학 연구소ㆍ핵연료주기공학 연구소, 동경대 원자력 연구시설 등 원자력 사업자 18곳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바라키현 내 도카이촌은 이 중 13곳이 밀집해 있다.
이바라키현은 원자력 사업자 18곳과 각각 ‘원자력시설주변에 대한 안전확보와 환경보전을 위한 협정’을 맺고 있다. 또 원자력 사업자는 원자력 시설을 직접적으로 품고 있지는 않지만, 근접한 지자체와도 ‘원자력시설 주변지역에 대한 정보제공을 위한 협정’을 맺는다.
전자는 원자력 시설 설치ㆍ변경ㆍ가동 등에 지자체가 힘을 행사하고 입회 조사권이 부여되는 등 정책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후자는 정보공개 또는 소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바라키현은 안전협정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고자 관련 인원만 총 23명을 투입하고 있다.
이바라키현에서 원자력안전협정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지난 1999년 발생한 재앙 때문이었다.
핵연료회사인 JCO의 한 작업자가 우라늄을 질산에 녹이는 과정에서 우라늄의 취급 제한치(2.4kg)를 넘는 16kg 규모 우라늄을 넣어 핵 임계치를 초과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작업자 3명이 피폭됐고, 그중 2명이 사망했다.
사건 이후 2000년대부터 이 제도는 지역에 구조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며, 타 현에서도 원자력 시설이 있는 지역이라면 모두 이 제도를 택하고 있다.
▲ 이바라키현에 위치한 원자력 사업소 18곳 위치. 환경방사선상시감시측정구 73곳 위치. |
▲지자체장이 원자력 시설에 대해 ‘승인’하지 않으면 ‘가동’할 수도 없다 = 일본 원자력안전 협정이 담는 내용은 자세하면서도, 지자체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조항들을 곳곳에서 볼수 있다.
우선 원자로ㆍ방사성폐기물저장고ㆍ냉각수 취배수시설 등 주요 원자력시설을 설치ㆍ변경ㆍ폐지하려면, 지자체에 미리 계획해 알려야하며 승인을 얻어야만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중앙정부에 의해 원자력 시설 계획이 세워져 지역 의견이 담길 수 없는 국내 현실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밖에 원자력 시설에서 진행되는 건설공사의 진척현황, 원자로 시설의 정기검사 결과, 방사선량 모니터링 관측점 설치 또는 변경 내용은 물론 직원 보안교육 계획과 실시 내용까지 원자력 사업자가 지자체에 모두 보고하게 돼 있다.
또 원자력 시설에 안전 우려가 있을 때 즉각 전화로 지자체에 통보하고, 동시에 사태의 경과에 응당한 문서로 연락도 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지자체에게 ‘입회조사와 조치권’이 인정된다는 게 큰 특징이다.
지자체가 원자력 안전에 대한 의혹이 생기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원자력사업자에게 자료 제출을 요청하고 입회 조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조사 결과, 필요할 때 원자로 시설 정지나 출력제한 등 조치를 요구할 수도 있다.
협약에는 사용후핵연료관련 내용도 포함됐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미리 계획서를 제출해야만하며, 운송 시에는 해상 운송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 이바라키현은 해마다 18곳에 달하는 원자력 사업소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한다. 보고서에는 방사성 물질 배출양, 교부금, 사고 기록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
▲“이런 것 까지 공개를?” 사업자별로 농축산물 내 방사선량도 공개…= 이바라키현 18곳 원자력 사업자를 중심으로 환경방사선이 상시 측정돼 그 결과가 이바라키현 ‘환경방사능모니터링위원회’로 전달된다.
현 내에만 측정소는 총 73개다(사진). 위원회에는 시민단체ㆍ지역주민ㆍ행정가ㆍ전문가가 포함돼 있어 이상징후가 있다면,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구조다. 이바라키현은 해마다 원자력사업자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사진).
보고서에는 측정소에서의 환경방사능 측정결과는 물론 원자력 사업자가 해마다 배출하는 방사선량을 세세하게 표시한다. 방사선량의 형태(대기ㆍ해양ㆍ토양)에 따라 측정해 공개한다.
심지어 원자력 사업자 내 해산물, 농축산물 등에 대한 방사선량도 모두 조사해 표기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이바라키현과 협정을 맺은 18곳은 모두 이 같은 보고를 수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국내 대전지역에서는 원자력 사업자가 교부금을 내는 정책은 없다. 하지만, 일본에선 원자력 사업자가 지자체에 내는 교부금을 내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상세 내용도 보고서에 들어간다.
어느 사업자가 얼마를 내는지도 한눈에 볼 수 있다.
각 원자력 사업자가 설립된 이후 일어난 사고도 해마다 누적해 기록하고 있다. 당시 사고가 일어난 시기, 원인, 결과, 방지 대책 등이 세부사항이다.
이 같은 내용은 국내에선 원자력연구원이나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보안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꺼리는 항목들이다.
▲ 18곳에 달하는 원자력 시설이 밀집한 이바라키현 위치. |
▲대전시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원자력안전협정을 맺는다면? = 일본 그대로 원자력안전협정 모델을 지금 당장 국내에 도입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일본은 약 20여 년에 걸쳐 문화와 관행처럼 협정 제도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왔기때문에 국내에서 짧은 시간 내 정착시키기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내 상황 대전의 지역적 특성이 충분히 고려돼 도입될 필요가 있다.
대전시는 최근 지역 원자력 안전 문제에 대한 시급성을 인정해 시 주관으로 ‘원자력시설안전성시민검증단’을 꾸렸다. 이 검증단은 오는 27일 발족한다.
27명의 시민단체ㆍ행정가ㆍ전문가 등으로 꾸려진 검증단은 앞으로 원자력연구원의 안전문제를 풀어나갈 계획이다. 이 단체가 독립성을 갖고 활동하고, 활동으로 나온 결과를 원자력연구원이 인정할지 협약에서 명시할 필요성도 있다.
협정이 맺어지지 않거나, 이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면 검증단의 역할은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원자력안전협정 시스템 정착이 가장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적 구속력은 없더라도 주민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감시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해야한다는 것이다.
고은아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형식적으로 원자력안전협정을 맺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협약 내용이 시스템화돼 자리 잡아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일본 모델이 대전 지역에 알맞게 적용될 수 있도록 충분히 검토된 후, 앞으로 대전시와 주민 차원에서 원자력 안전관리ㆍ감독의 권한을 충분히 갖고 지역사회에서 신뢰가 쌓일수 있도록 협정을 준비해 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소망 기자 soman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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