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는 보물과 같은 ‘대덕연구개발특구(이하 대덕특구)’가 있다.
대덕특구는 지난 40여 년간 국가 경제발전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지만, 그들이 세운 공에 비해 지역사회에서 박수 소리는 크지 않았다.
대전과 대덕특구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리상으로는 인접했더라도 대덕특구는 대전 내 ‘섬(Island)’라고 불릴 정도로 고립된 존재였다.
대전과 대덕특구가 서로 통(通)한다면, 서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무궁무진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중도일보는 대전과 특구가 서로 상생하기 어려웠던 이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앞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 등을 정리해 본다.<편집자 주>
대덕특구는 지난 1974년 대덕연구단지로 출발해 국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올해 3월 기준 정부출연연구기관 26곳, 교육기관 7곳, 기타연구기관 10곳, 기업연구기관 16곳 등 과학기술 관련 연구기관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이에 맞게 연구인력들도 대전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는 대덕특구 내 3만5000여명에 달하는 연구 인력이 존재한다.
40여 년 전 대덕연구단지에 연구기관이 하나 둘 세워지게 된 것은 정부부처의 전략에 따라서였다.
과학입국(科學立國)의 명제 아래 1973년 정부 지시로 ‘제2 연구단지 건설기본계획’이 확정 된 게 그 시발점이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연구인력이 전부 대전에서 충당될 수는 없었다.
전국 곳곳의 연구원 또는 외국 연구원들까지 모두 대전으로 모여들었다.
당시 연구단지 연구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연구’ 하나였다.
지역 사회ㆍ문화ㆍ예술 등에 크게 관심을 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타향생활을 하는 그들은 대전지역에 대한 애정도 크지 않았다.
단지 그들에겐 과학기술 발전으로 국내 경제를 살리겠다는 사명감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원들은 대전에 대한 소속감보다는 정부에 대한 소속감이 컸다.
연구소의 운영ㆍ연구 예산 모두 중앙정부로부터 내려와 “지역사회에서 일을 한다”기보다 “나라를 위해 일을 한다”라는 인식이 강했다.
대전도 연구단지가 거리상으로 가까웠던 것은 맞지만, 심리적으론 멀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연구원들과 다가가고 싶어도 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간이나 특별한 구실이 없었다.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굳게 닫힌 연구소 정문은 시민들로 하여금 발을 돌리게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연구단지 연구원과 시민 간 관계는 멀어져 갔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창의력ㆍ상상력ㆍ융합ㆍ소통 등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세상으로 변했다.
그사이 연구원들의 연구 역량은 더욱 높아졌고, 대덕특구에는 수많은 첨단 지역기업들이 들어섰다.
대덕특구는 지역기업과 밀정한 연구를 통해 지역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대전은 이 같은 기회를 통해 지역 경제를 살릴수 있는 기회다.
대전과 대덕특구 모두에게 득이 되는 과학문화 소통, 상생 협력 프로그램 등을 시스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영주 대덕특구 상생발전협의회장은 “다른 도시에는 없는 대덕특구라는 자산을 통해 대전은 다양한 지역 사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대전이 과학ㆍ문화ㆍ예술 등이 융합할 수 있는 지역이 되도록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소망 기자 soman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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