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수진 을지대병원 신경과 교수 |
매사에 여유가 없고 신경 쓸 일이 많은 현대인은 종종 건망증을 경험하게 된다. 30세 이후로 뇌세포가 감소하면서 기억력이 감퇴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깜빡하는 일이 너무 자주 반복되면 슬그머니 ‘혹시 치매 증상은 아닐까’ 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 것이다.
뇌에 저장된 기억 중 군데군데를 예고 없이 텅 빈 공간으로 만들어놓는 건망증, 정말 그냥 웃어넘겨도 괜찮은 걸까?
건망증은 뇌가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다 과부하가 생긴 탓에 일시적으로 저장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경우를 일컫는다. 사실, 엄연히 이야기하면 질병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근육이 점점 약화되는 것처럼, 건망증도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40~50대가 되면 젊었을 때에 비해 기억하는 반응 속도가 느려지거나 기억용량이 부족해 일시적으로 잊어버리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그런 만큼 건망증은 증상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회복된다는 게 특징이다. 한 마디로 힌트를 주면 다시 기억해낼 수 있을 만큼 약간의 기억력 저하 상태인 것이다. 가물가물하고 잊어버리기는 해도 건강한 상태의 정상적인 기억 현상이다.
건망증의 원인은 나이, 스트레스를 비롯해 집중력 저하, 피로감, 사회활동 감소로 인한 단조로운 생활 등 다양하다. 심혈관질환이나 당뇨, 빈혈 등 질환에 의해 생기는 경우도 있고, 술과 담배를 즐길수록 더 자주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또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겪는 여성이나 폐경기 이후의 중년 여성에게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특히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단조로운 일상, 육아 스트레스, 생리로 인한 빈혈, 가사로 인한 피로감 등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건망증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원인으로 꼽힌다.
건망증이 자주 반복되면 치매가 온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게 된다. 사실 건망증과 치매는 기억력 저하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증상은 명백하게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건망증이 기억을 일시적으로 잊은 것이라면, 치매는 기억을 완전히 지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건망증은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순간에 떠올리기 어려울 뿐이므로 차근차근 상황을 되짚어가면 다시 기억해낼 수 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치매로 인한 초기 치매 증상은 머릿속으로 기억 자체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떠올릴 수가 없다.
건망증이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라고 해서 그저 나이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증세 초기에는 사소한 것을 놓칠 수 있지만 빈도나 종류가 다양해지면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불편함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건망증은 일시적인 기억장애 상태이므로 장애요인을 제거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우선 건망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그 요인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가벼운 걷기나 체조 등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신선한 제철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일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잠시 시간을 내어 스트레칭을 하거나 의자에서 일어나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것도 좋다. 또 흡연과 과음은 기억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만큼 피해야 하며,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증이 있다면 전문의와 상의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윤수진 을지대병원 신경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