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첫 번째, 결정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객선 세월호는 수학여행을 가는 단원고 학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출항했다. 2014년 4월 15일이었다. 4월 16일 진도 병풍도 해상에서 배가 기울어졌다. 세월호 승객은 119에 신고했다. 안내방송은 기다리라고 했다.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기다렸다. 출동한 경비정은 선장과 승무원을 구조했다. 퇴선안내는 없었다. 경비정도 탈출을 유도하지 않았다. 퇴선도 안내하지 않았다. 기다리던 304명은 탈출하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당일 날씨는 맑았다. 파도는 잔잔했다. 배가 기울 때 해수 온도는 12.6도 정도였다.
대통령은 그날, 본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관저에 머물러 있었다.
두 명의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덧붙여 말한다. 당일 10시 19분 10명이 넘는 승객이 마지막으로 배를 탈출했다. 10시 21분 마지막 생존자가 구조됐다. 7명의 해경소속 특공대원이 도착했다. 11시 35분이었다. 세월호가 이미 침몰한 뒤였다. 특공대원들은 당일 선내에 진입하지 못했다.
사고 당일 아침 9시, 조류는 0.2노트 또는 0.5노트였다. 10시 30분까지 조류는 2노트를 넘지 않았다. 바다로 뛰어든 승객은 큰 움직임 없이 떠 있었다. 구명뗏목이 펼쳐지자 헤엄쳐 다가갈 수 있었다. 조류의 영향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경비정의 측면에 사다리가 있었다. 표류하는 승객은 쉽게 승선할 수 있었다.
어선 10여척이 사고 해역에 대기했다. 어선들의 높이는 낮았다. 표류하는 승객들을 쉽게 올릴 수 있었다. 그 주위에는 어선보다 훨씬 더 큰 배 두 척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고 당일은 휴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지도력이 가장 필요한 때가 있다. 국가 위기가 발생하고 국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다. 2014년 4월 16일이 바로 그러한 날이다. 그 날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두 번째, 선고문은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가 침몰했다. 304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대통령은 관저에 머물러 있었다. 세월호 침몰은 모든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참사였다.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참사 당일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다. 김이수와 이진성 두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냈다. 대통령은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 다만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인 지난 10일 오전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세 번째, 재판소장 권한대행 이정미의 머리핀은 이런 말을 한다. 2015년 7월, 그리스 국민투표가 부결되자 독일 총리 메르켈은 공관으로 달렸다. 젖은 머리를 말리지 못했다. 화장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국가 긴급사태라 여겼다.
메르켈의 국민들은 머리 젖은 맨얼굴의 총리를 존경했다. 재판관 이정미가 읽은 선고문에 전직 대통령의 올림머리 이야기는 한 글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89페이지 긴 결정문의 보충의견에 딱 한 줄 언급됐다. 대통령의 주장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오후 3시 35분 미용담당자가 들어와 약 20분간 머리손질을 하였다’.
머리손질 이야기를 하지 않은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이정미의 머리핀으로 말했다. 진정한 국가지도자는 국가 위기 순간에 가장 필요하다. 피해자 가족과 아픔을 함께하고 어둠이 걷힐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주어야 한다. 머리핀 두 개를 달고 재판정에 달려온 재판관 이정미는 결정문에 쓰지 않은 말을 선고문에 담아 읽었다.
“어떠한 말로도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할 것입니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의 요체, 라고 퇴임사에서 그가 말했다. 위기에 처한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는 외양을 치장하는 따위의 일에 결코 견줄 바 아니다.
헌법과 법치, 진화하는 민주주의와 생명존중의 가치에 머리핀 두 개를 꽂아두고, 그는 3월 13일 퇴임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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