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희 (사)중소기업융합 대전세종충남연합회 교육분과위원장·KH워터 대표 |
순간 갈등이 생겼다. 직장은 너무도 안정적이고 보장된 직업이었지만, 10여 년 동안 매일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는 업무 일에 지쳐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의식에 샘솟았지만 일주일 넘게 갈등의 시간을 거쳤다. 결국 나는 일주일간의 고민 끝에 사표를 쓰고 과감하게 회사를 나왔다.
명예퇴직을 하고 같이 나온 직장동료들과 새로운 일을 찾던 중 한 정수기 회사의 세미나에 참석하며 물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 시절 정수기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20여 년 전에는 물을 끓여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사실 깨끗한 물에 대한 욕구도 별로 없었다.
또한 우리는 모두 물을 사먹는 시절이 올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나는 '적은 양의 물이라도 건강하고 깨끗한 물을 섭취해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엄마와 여자의 직감으로 과감하게 정수기 사업에 뛰어 들었다. 브랜드, 홍보 등 모든 면에서 대기업에 한없이 밀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내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또한 어려운 시기였던 만큼 남다른 절실함이 있었다. 그 당시도, 지금의 나도 대기업을 뛰어넘기 위해선 최고의 서비스와 성실함 밖에 없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는 언제나 고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뭐가 없을까를 생각했다.
고객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만든 결과물이 내 맘대로 디자인하는 '마추미 정수기'다. 밋밋한 정수기 전면에 회사의 로고를 넣어 정수기 자체가 홍보의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맞춤형 정수기다.
물론 전국에서 처음으로 상표등록을 마치기까지 수많은 좌절도 있었다. 그만 둬야 하나? 여자로서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하는 숱한 자괴감도 들었다. 하지만 구석자리를 차지하는 물건이 학교나 기업입장에선 보물단지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아! 아이디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건 섬세한 여성이기에 발견할 수 있는 아이디어구나' 생각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여성 벤처 CEO들은 이런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여성이라는 강점으로 도전하고 연구개발하는 분들이 참 많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 모두 누군가의 아내이고 엄마이고 평범한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제품개발을 위해 학업과 연구를 하면서도 창업지도사와 기술평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부와 제품개발에 몰두 하다 보니, 몸이 하나인지라 본업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매출도 많이 떨어져 힘들었던 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목표가 있었고 이런 어려운 고비들을 넘겨야 한 단계 더 올라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견뎌냈다.
처음 사업에 입문할 때 무작정 찾아갔던 제조회사의 회장은 나를 보고 “이런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거 같으니 다른 일을 찾아보시죠”라고 말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이런 끈기와 영업력이 어디에 숨어있었느냐”고 말한다.
나는 산을 많이 좋아한다. 산을 오르기 전의 사람들의 표정과 정상을 정복 하고 내려온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나. 정말 밝고 아름답다. 그렇다면 나오자! 일단 시작해보자! 시작하면 도전의식이 생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글을 읽은 모든 이들도 스스로도 몰랐던 잠재된 에너지와 능력들이 쏟아져 나올 거라 믿는다.
이경희 (사)중소기업융합 대전세종충남연합회 교육분과위원장·KH워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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