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1월을 향한 길에서 몇몇 대기업이 부도 처리되고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화대책을 발표했으나 캠퍼스의 낭만 앞에서는 그저 메아리칠 뿐이었다.
어느덧 그날이 찾아왔다. 작고 낡은 브라운관TV 속에서 “IMF에 유동성 조절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가투(街鬪) 깨나 했다던 선배들은 졸업을 앞두고 빠르게 취업시장으로 몰려나갔고 후배들은 입학과 동시에 ‘이념과 정치 따위’하며 도서관으로 직행했다.
1997년말 30대 대기업그룹 중 8개와 1만7000여 기업이 연쇄 도산했다. 근로자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20년 전 97학번으로 대학을 다니던 그때 IMF로부터 시작된 살풍경한 단면이다. 경제부 기자로 지역 경제계 인사들을 만나며 “요즘 IMF때보다 더 힘든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당시의 스산함이 떠오른다.
최근 몇년간 이어지고 있는 경기침체와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 내수부진과 실업률, 국정농단에 따른 사회혼란 등을 감안하면 기업인들의 체감경기가 지나친 것이라고 나무랄 수만 없을 듯하다.
1997년에 이어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떠올리며 올해 큰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10년주기 위기설’에 더 구체적으로 ‘4월 위기설’도 파다하다.
급기야 정부 차원에서 “4월 위기설에 동의하기 어렵다”거나 “상상 못할 위기는 없을 것이며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며 진화에 나설 정도다.
문제는 심리다. 지역 기업인들의 진단도 비슷하다. “힘들긴 한데 그렇다고 언제까지 코 빠뜨리고 있을 거냐”라는 말로 집약된다.
“IMF위기도 결국 잘 극복해 내지 않았느냐”는 성공의 경험과 저력도 기억해 낸다.
여기엔 무엇보다도 불굴의 도전정신과 기술혁신, 변화를 이끌어가는 리더십 등으로 무장한 기업가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문승현 기자 hey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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