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충북 영동 미각 여행
|
|
▲한 번 먹어본 맛에 반해 다시 찾은 영동곶감은 간식거리로 손색이 없다. 시장 한 켠 노점에서 산 이 곶감이야말로 처마 밑에서 자연의 햇빛과 바람으로 말린 '오리지널리티 곶감'이다.
|
|
영동을 여행지로 택한 이유는 순전히 곶감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호랑이 온다는 말엔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서 곶감 준다는 말에 울음을 뚝 그쳤다는 그 곶감 말이다.
재작년 이맘때 충북 영동에 갔다가 곶감을 사다 먹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이런저런 곶감을 먹어봤지만 영동 곶감이 단연 최고였다. 종종 사먹는 티라미수도 좋아하지만 곶감이 한 수 위였다. 내 입맛에는 그렇다는 거다. 쫄깃하면서 달디단 곶감 맛을 잊지 못해 언제 한번 또 가야지 벼르던 차였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여행가면 그 지역 특산물을 사들고 오는 게 버릇이 됐다.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들고 다니는 게 거추장스러운데도 안 사고는 못 배기는데 어쩌랴. 작년 11월 포항 죽도시장에선 대전에서는 볼 수 없는 싱싱한 고등어를 보자마자 덜컥 사버렸다. 스티로폼 박스였으나 얼음팩을 넣어 좀 무겁기도 하고 부피도 커 헉헉 대며 '정성이 뻗쳤구나' 투덜거리며 들고 다녔다. 덕분에 지금도 무를 두툼하게 썰어넣은 얼큰한 고등어 찌개를 끓여 국물까지 다 먹어치우는 기염을 토하는 중이다. 울릉도 갔다가 사온 미역은 꽝이었다. 아마 중국산이었던 것 같다. 이역만리(?) 바다 건너서 사온 미역이건만 국을 끓였는데 아무 맛이 안났다. 비닐 장판 씹는 맛이랄까. 엄마한테 사다드린 보람도 없이 핀잔만 들어야 했다.
각설하고, 여행자들의 로망인 기차에 몸을 실었다. 빈 좌석 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꽃다운 소녀들은 뭐가 좋은지 까르르 까르르 싱그런 웃음을 터트리며 얘기꽃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다. 부산여행 가나? 병든 닭마냥 고개를 주억거리며 조는 틈틈이 옆자리에 앉은 청년의 전화통화를 엿들었다. 장기간 해외여행 하고 이제 막 들어온 모양이다. 볼리비아가 어쩌고, 브라질이 저쩌고, 밀림 속에서 9시간 버스타고 가는데 어쩌고…. 여행은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일상에서와는 다른 나를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밥벌이에 지친 나날 속에 한줄기 소낙비를 맞는 듯한 기분을 여행이란 행위에서 맛보게 된다.
영동역에 내리자마자 식당을 찾았다. 뱃속에서 기차 화통 삶아먹는 소리가 요란하다. 희한하게 기차여행할 땐 늘 출출하다. “조오기 쫌만 내려가면 노란집이 있어. 콩나물해장국이 먹을 만 혀. 한번 가보슈.” 택시기사들이 일러준 대로 가보니 식당 이름이 '밥집'이다. 소박해서 일단 맘에 들었다. 콩나물해장국 역시 맛있었다. 콩나물이 질기지 않고 아삭하게 씹히는 게 싱싱하고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국밥이다. 입맛에 맞는 콩나물해장국 먹어본 지가 오래돼서 기쁨이 컸다. 옛 중국의 '정자'라는 사람은 “주막의 음식맛은 그 집(혹은 주인)의 상(相)과 주막강아지의 생김새로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식당주인들의 인상이 푸근하다. 고부간인 줄 알았는데 시고모란다. 특이한 식당이름이 궁금했다. “처음엔 '3천원밥집'이었는데 물가가 올라서 5천원으로 올렸더니 손님들이 '3천원'은 빼라고 하데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밥집'으로 하고 있지 뭐.”
동면에서 깨어난 곰처럼 요즘 자꾸 먹을 것만 탐하게 된다. 영동은 풍광좋은 곳도 많건만 또 입맛이 다셔진다. 하여, 국내 최대 와인 공장 '와인코리아'로 돌진했다. 영동이 포도로 유명한 건 알았지만 농가형 와이너리가 40여곳이나 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과연 '과일의 고장' 명성답게 영동읍내 가로수는 감나무이고 들판은 천지가 포도밭이다. 달콤한 와인향을 따라 코를 벌름거리며 찾아간 곳이 시음장이었다.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3종류. 술을 못 마시는 탓에 쬐끔씩 마셨는데도 금세 나른해지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아우, 취한다. 전시장 담당자는 이런저런 체험시설이 구비돼 있어 축제기간엔 성황이라고 설명했다. 졸음을 참으며 마을버스를 타려고 버스정류장에 갔는데 재밌는 걸 발견했다. 고자! 남세스럽게 웬 고자냐고? 벽에 붙여놓은 버스시간표 행선지에 고자라는 마을이 있는게 아닌가. 옛날에 내시들이 은퇴후 그 마을에 내려와 살았나? 고자마을 남자들 놀림 깨나 받겠는 걸?
한적한 시골 읍내라 해도 시장 가는 길을 물어물어 갔다. 초행길이 아닌데도 기억이 까마득하다. 입춘을 하루 앞두고 코끝에서 살랑대는 달큰한 바람이 사람 환장하게 애간장을 녹인다. '곶감몬고' 발걸음에 조바심이 났다. 허탕 치면 어떡하지? 휴, 곶감 가게는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다. 주인아주머니의 후한 인심도 한결같았다. 곶감 세 개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쇼송이란 사람은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솔직한 건 없다”고 했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맛난 걸 먹으면 까칠한 성미가 금방 말랑말랑해지니 원. 먹보의 맛있는 영동 나들이는 앞으로도 쭈욱~.
▲Tip=대전역에서 무궁화호 기차가 자주 있다. 30분 걸린다. 대전복합터미널에서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곶감축제는 12월 중순 열리며 감잼만들기, 감껍질 족욕체험이 있다. 포도축제는 8월말 열리며 포도따기, 포도밟기 등이 있고 와인축제는 10월 초 영동와인 시식, 와인족욕, 와인초콜릿 만들기 체험으로 열린다.
글·사진=우난순 기자 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