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시의 목록’…99인의 생각·의지 담아
“이래두 살구 저래두 살구지만 몸빼와 월남치마 펄럭거리는 살구나무지만 이 집이 올해도 이렇게 꽃으로 뒤발을 하고 서 있는 건 늙은 당나귀 살구나무가 힘껏 이 집 담벼락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송진권 살구나무 당나귀 중 )
대전·충청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시인들이 이에 저항하는 시선집을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서 이름 석자를 확인할 수 있어 가슴이 뛰었다는 시인 99명이 시집 ‘검은 시의 목록’으로 뭉친 것.
지역에서는 신경림 시인의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시‘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를 비롯해 블랙리스트 목록에서 ‘반드시제외’라는 항목이 기입된 충주 지역의 이안 시인, 청주 지역 국회의원이며 시인인 도종환 시인, 충북 보은 출신의 김사인 시인, 송찬호시인, 충북 옥천의 송진권 시인 등이 참여했다.
또 옥천 출신으로 현재 젊은작가포럼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병록 시인, 김성규 시인, 영동 출신의 양문규 시인을 비롯해 대전 충남 지역의 시인들로는 충남 홍성 출신인 이정록 시인, 대전작가회의 부지회장 박소영 시인, 애지출판사에서 꾸준히 시집을 출판하는 함순례 시인, 충남 공주 출신의 이은봉, 박찬세 시인, 부여 출신의 이재무 시인 등의 시가 실렸다.
특히 보은의 오장환문학제는 도종환 시인이 문학제에 꾸준히 참여한다는 이유로 예산 지원이 삭제되어 있어 논란이 증폭됐다.
이는 블랙리스트가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걸쳐 작성되었고 지역 문화행사까지 관여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99편의 시는 이들 시인들이 각자 다양한 방법로 꾸준히 사회적 목소리를 내왔다는 사실을 각인한다.
원로 신경림, 강은교 시인부터 박준, 박소란 등 젊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99명 시인의 시를 한데 모아서 펴낸 것은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얼마나 비극적이고 잘못된 일인지를 시사하고 있다.
또 하나의 검은색이 아니라 각각의 고유한 색으로 빛나는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시인들은 시집 출간을 기념해 11일 오후 2시 연극인들이 광화문광장에 세운 ‘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 낭송회를 연다. 도종환·함민복·정우영·안상학·천수호·유병록·권민경·최지인 시인 등이 참여한다.
도종환 시인(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블랙리스트 작성은 유신시대 검열 회귀, 분서갱유와 다름 없다”며 “앞으로 시인을 비롯한 문화에술인들은 더욱 강건한 모습으로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검은 시의 목록이 조용하지만 굳센 외침으로 대중에게 전해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영 기자 sy8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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