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화골프 고대흥&강경애 부부 CEO 모습. |
고대흥 &강경애 부부 CEO
1980년 대전에서 설립된 골프클럽 전문기업
2016년 벤처기업인증, 우수제품 선정 등 쾌거
기술력만큼은 세계 수준, 올해 베트남으로 수출
“국내 골프클럽 순수기업은 ‘아화’가 유일할 거예요.”
대한민국에 ‘골프’가 들어온 것은 1900년 고종 황제 시절이었으나,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까지는 대략 100년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대전 토종 브랜드이면서 해외 브랜드에 맞서 국내 골프 클럽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아화골프’가 설립됐던 1980년대 당시에도 골프는 여전히 낯선 스포츠였다. 비인기 종목인 탓에 국내에서는 어느 누구도 클럽을 만들겠다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다. 이미 수입제품이 즐비했고, 기술력과 질적인 측면에서 세계시장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전은 언제나 무모함과 대담함을 기반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아화골프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하나가 된다’는 아화(我和)라는 이름을 내걸고 척박한 대전에서 골프 클럽제작 전문기업으로 출발했다.
강경애 대표는 “오빠가 시작한 아화골프를 이어받은 지 7년쯤 됐고, 서구 내동 현위치로 이전한 지는 3년 정도 됐어요. 대전 토종기업이지만 클럽 하나하나의 기술력만큼은 세계 제품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37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아화골프는 느림보 성장을 고수한다.
홍보나 마케팅에 주력하지 않았다.
충실하게 연구하고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부부 대표의 입모아 말했다.
30년 동안 소재와 스펙에 대한 연구는 물론 고객 1명만을 위한 클럽 피팅을 실시하고, 핸드메이드 개념으로 클럽과 용품은 소량 다품종 제작을 고수해왔다. 드라이버의 경우 첫피팅 이후 2~3주간 시타를 해보고 샤프트를 교체해주는 ‘재피팅’이 특징인데, 이는 아화만의 맞춤형 제작 원칙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큰 드라이버 헤드, 롱아이언에 효과적인 클럽까지 새로운 제품 개발은 탄탄한 성장력의 원동력이 됐다. 이런 점 때문일까. 매주 토요일이면 전국 곳곳에서 피팅을 하러 오는 고객들로 매장은 언제나 북적인단다.
1990년부터 2000년 초반까지 암울한 시기도 거쳤다. 금산 복수면에 제조공장을 가동했는데 찍어내는 물량은 많았지만 판매에 한계가 있어 결국 재고가 어마어마하게 쌓였다. 공장 직원이 300여명이나 됐지만, 결국 국내 공장을 접고 중국 심천으로 제조공장을 이동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고대흥 대표는 “어려운 시절을 겪고 나니 내실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며 “작년 기업부설연구소를 등록하고 클럽의 무게, 각도, 길이 조절, 밸런스를 모두 자체적으로 실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6년은 집약된 성과가 빛을 본 한해였다.
벤처기업인증과 여성벤처기업 우수제품 선정, 대전시장표창 등 괄목할 성적을 이뤄냈다.
강 대표는 “아화골프의 강점은 수입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국산제품이라는 점이다. 내수시장을 강화할 수 있는 기술력을 쌓아왔다. 토종브랜드, 지역브랜드라는 편견은 분명 존재하지만 경기와 수도권 등 전국에 퍼져있는 잠재고객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강경애 대표는 “과장없이, 뚝심있게 오래가는 기업이 되고 싶어요. 올해는 베트남과 중국으로 수출에 도전합니다. 신제품 특허출원은 물론 메이저브랜드가 시도하기 어려운 틈새시장도 지속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나와 하나가 된다는 이름처럼 아화골프의 클럽은 골퍼와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도록 최상의 제품을 추구하고 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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