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유산 향적봉에서 바라본 눈 덮인 산과 해돋이. |
소복이 쌓인 눈은 덕유산 향적봉을 오르는 내내 발밑을 간질이듯 부드럽게 맞아주었고 세찬 바람에 얼음 옷을 입은 나무의 상고대는 아름답게 빛났다.
대전과 충남에서 1시간 남짓에 도착할 수 있어 나들이터 찾았던 곳을 이번엔 '더 깊은 겨울'을 목표로 지난달 작심하고 찾아갔다.
무주리조트에서 운영하는 곤돌라를 이용해 탑승 15분 만에 설천봉(1525m)에 도착하는 코스 대신 걸어서 정상 향적봉(1614m)에 오르는 길을 택했다.
곤돌라는 오전 9시부터 운영해 오후 4시 30분 마무리되는데 그래서 향적봉 일출은 걸어 오른 자에게 덕유산이 주는 선물과 같다고 한다.
▲ 천년고찰 백련사 입구에 세워진 일주문. 세상과의 인연을 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기에는 늦은 출발이어서 시간단축에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한 발씩 내디뎠다.
등산로 입구부터 천년고찰 백련사까지 이어진 코스는 구천동 계곡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걷는 산책길이다.
눈이 소복한 등산로는 꽝꽝 언 아스팔트와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함을 주었고 깊은 산 속에서 느끼는 적막은 반대로 새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사위가 어두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못 보더라도 힘찬 물소리에 구천동 계곡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완만한 산책길을 1시간 20분 걸어 백련사 일주문에 도착하는데 1000년 역사의 사찰이면서 6·25전쟁의 흉터를 지닌 곳이다.
신라 흥덕왕 5년(830년)에 창건돼 어림잡아도 1100여년 역사를 품다가 6·25때 불타버려 1962년 대웅전부터 재건돼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이 구비 9000번 부딪치며 물길을 이룬다 해서 구천동이라 이름붙여진 깊은 골자기 사찰에 전쟁의 총부리가 닿았던 셈이다.
▲ 구천동 계곡에 맺힌 고드름. |
백련사 대웅전을 지나 꺾어진 구간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가파른 경사에 눈 쌓인 산길을 1시간 20분가량 이어졌다.
국내 네번 째 높은 산임에도 철계단이나 바위가 적어 몸에 피로감은 덜하고 새벽녘 바람도 잔잔해 더없이 좋은 등산환경이었다.
다만, 덕유산이 국내 산악사고 많은 국립공원 중 다섯 번 째이고 대설주의보 때 등산로가 폐쇄되므로 사전에 날씨 확인과 방한의류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숲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골자기 풍경에 잠시 쉬어가기를 몇 차례 반복한 끝에 향적봉 정상에 도착했다.
중봉을 거쳐 덕유평전·구룡산에 이르는 길은 철쭉 군락지로 봄에 인기가 좋고 여름에는 구천동계곡의 시원한 물을 찾아오며 가을에는 진한 낙엽까지 사계절 인기인 덕유산.
▲ 향적봉 정상 바위에 안개와 구름이 언 상고대가 맺혀 있다. |
키 작은 주목에 하얗게 엉겨붙은 상고대는 거친 바람과 나무의 생명력이 만든 예술품 같았다.
해발 1000m 이상, 영하 6도 이하이면서 습도 90% 이상의 조건을 유지할 때만 만들어진다는 상고대는 머릿결이 흩날리듯 바람의 흔적을 담고 있다.
바위에 맺힌 상고대는 생선의 비늘처럼 겹겹히 덮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또 대봉·중봉·삿갓봉처럼 해발 1300m 남짓의 봉우리들이 층층이 줄지어 선 모습이 눈아래 펼쳐지며 해돋이와 어울려 장관을 이뤘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 카메라에 눈을 갖다대며 일출과 상고대 그리고 설경을 촬영하느라 여념 없었다.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때 무주리조트가 경기장으로 개발되면서 스키장과 곤돌라가 만들어져 사람과 가까워진 덕유산, 등산에서도 더 깊은 겨울의 진미를 느낄 수 있었다.
▲등산코스
-덕유산리조트 곤돌라는 오전 9시~오후 4시30분 설천봉까지 운행. 왕복1만5000원 설천봉~향적봉 600m 20분 소요
-걸어서 등산 후 하산할 때 곤돌라를 이용 후 셔틀버스를 타고 출발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음.
-정상에 향적봉대피소가 있어 간단한 식사와 화장실 이용가능.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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