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교진 세종교육감 |
예로부터 새벽녘 먼동이 터올 무렵부터 힘찬 울음으로 새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알리는 닭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길한 동물로 여겨져 왔다. 닭의 해를 맞이해 기쁘고 좋은 소식이 한가득 전해졌으면 좋겠다.
요즈음 닭이 큰 수난을 당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수천만마리가 도살처분되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부의 늑장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양계 농가의 어려움에 마음이 아프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사람들이 지나친 탐욕으로 공장식 대량 사육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라 닭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이번 일이 동물복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키운 닭과 달걀이 우리 몸에도 좋다고 한다.
시골에서 자연스럽게 닭을 놓아 기르는 친구가 있어 닭의 이모저모를 듣게 되었다. 닭의 수명이 30~40년이나 된다는 이야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을 놀리며 '닭ㅇㅇㅇ'라고 하지만 실제로 닭은 생각보다 매우 지혜롭다는 것이다. 대철학자인 도올 김용옥 선생님 조차 '계림수필'에서도 닭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으셨다니 친구의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친구는 교육과 관련해 닭에게 배울 점을 말해 주었는데 참으로 새겨 볼만한 이야기다.
닭은 알이 부화하기까지 20일쯤의 기간을 먹고 마시지도 않고 꼼짝 않고 소중히 품어 준다. 자식이 건강하게 태어나도록 지극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야 우리네 엄마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요즈음 세태를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지나치게 일찍 아이를 품에서 떼어 내는 엄마들이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서와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는 엄마 품에서 자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따뜻한 품을 느끼며 자란 아이가 세상에 따뜻함을 보태 줄 수 있다. 엄마가 품어 기를 수 있도록 사회적 배려와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모든 생명의 탄생이 경이롭지만, 달걀이 부화하는 모습은 정말로 신비하고 아름답다. 어미 닭의 품에서 따뜻한 돌봄을 받으며 자란 병아리가 '삐약삐약' 가녀린 울음과 함께 껍질을 쪼아 '탁탁'하는 소리를 낸다. 이 소리를 기다려 온 어미 닭은 병아리가 쪼는 곳을 밖에서 함께 쪼아 준다. 이렇게 병아리가 안에서 하는 짓을 '줄'이라 하고, 밖에서 어미 닭이 함께 쪼는 것을 '탁'이라 하는데 '줄'과 '탁'이 같이 일어나는 것을 '줄탁동시'라고 한다. 그런데 어미 닭은 결코 힘주어 껍질을 깨뜨리지 않는다. 어미 닭이 크고 힘센 부리로 한 번만 내리 쪼면 껍질은 단번에 깨어질 테지만 어미 닭은 그저 병아리가 쪼는 것에 맞장구만 쳐 줄 뿐이다. 그래서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어떻게 보면 답답하게 보이는 이 시간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병아리가 20일을 보낸 알 속과 바깥은 공기도 다르고 온도도 다르기 때문에 조금씩 깨어지는 틈새로 천천히 바깥 공기가 스며들게 되며, 병아리는 그 시간 동안 바깥 세계에 적응하며 살아갈 힘을 키우는 것이다. 이 시간을 주지 않고 껍질을 빨리 깨 버리면 병아리는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자식과 부모의 관계,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줄탁동시'의 가장 큰 가르침은 '기다림'이다. 부모와 교사는 자식과 학생이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마음으로 응원하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급한 마음으로 지나친 간섭과 도움을 주게 되면 스스로 살아갈 힘을 키울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잃게 하는 것이다.
'헬리콥터 맘'과 같은 말이 유행하는 요즈음 세태에 새겨 보아야 할 이야기다.
어미 닭이 병아리가 온전히 세상에 나오도록 마주 보며 응원하고 스스로 힘으로 껍질을 깨도록 기다려 주는 아름다운 모습. 닭의 해에 어미 닭과 병아리가 가르쳐 주는 '줄탁동시'의 지혜를 배워보자.
최교진 세종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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