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탑거쳐 삼불봉까지 큰배재코스 오전 6시부터 산행
도시숲에서 볼 수 없는 별을 진짜 숲에서는 한눈에 관찰
붉다 못해 은빛으로 보이는 태양에 또다른 한 해 다짐
28일 새벽 부랴부랴 짐을 챙겨 계룡산 품을 향해 뛰듯 차를 몰았다.
기상청 산악날씨 예보를 매일 확인하면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구름 없는 날을 벼른 끝에 그날이 오늘이었다.
별렀던 날에 늦잠을 일어났고, 동학사 제1주차장에 도착한 게 오전 6시 정각이었다. 예정했던 시각보다 한 시간 늦게 산행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코스를 고민 끝에 동학사 1코스 대신 남매탑을 거쳐 삼불봉으로 올라가는 큰배재 단축산행을 결정했다.
오는 길 라디오에서 아침기온이 영하 7도에 매서운 추위가 닥쳐왔다는 뉴스처럼 들숨을 타고 들어온 계룡산 냉기는 온몸으로 퍼쳐 닭살 같은 소름을 일으켰다.
동학사와 은선폭포를 거쳐 관음봉에 도달하는 1코스는 잘 포장된 산책길을 20분가량 걸으며 몸을 준비할 수 있으나 갑작스레 변경한 이날 코스는 초입부터 경사진 비포장 산악길이 시작됐다.
꽝꽝 언 흙과 돌 그리고 이파리를 모두 떨어내 가지만 남은 나무, 눈 없는 겨울 산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돌처럼 굳은 등산로에 흙은 내 등산화를 튕기듯 떨쳐냈고, 지팡이처럼 사용하는 피크도 돌에 튀기며 산과 내가 교감할 온기는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순간 거친 겨울 계룡산에 괜히 왔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오늘 산행이 쉽지 않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또 계획을 변경하는 바람에 경험 없던 등산로를 랜턴 하나에 찾아 오르다 보니 길을 잘못 들어 되짚어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갈등과 후회 속에 20분쯤 걸어 오르자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오며 목덜미에서 살살 땀이 나는 게 느껴졌다.
정상에서 해뜨기를 기다리는 동안 땀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눈앞에 장관을 보고도 감상하지 못하고 하산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몸이 데워져 열기가 느껴질 때 목에 두른 목도리와 머리에 쓴 비니를 벗고 귀마개만 착용했다.
한결 시원하면서 적당히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피크를 다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새 차가운 산공기가 맑게 느껴지면서 몸이 오히려 가벼워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몸과 마음이 새벽 산행에 적응한 모양이다.
출발점에서 1.7㎞ 떨어진 큰배재에 40분 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신선봉이고 오른쪽이 삼불봉 방향의 길이다.
가방을 내려놓고 랜턴도 꺼본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12월 마지막 별이 보인다. 별자리 중 유일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게 북극성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마주한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다.
두 별자리를 자정부터 새벽까지 관찰되는데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듯 회전하는 게 썩 볼만한데 이날 나뭇가지에 가려 관찰하지 못했다.
척박한 겨울 계룡산에서 맑은 하늘에 비추는 별을 뒤로하고 다시금 짐을 챙긴다.
가방에서 아이젠을 꺼내 신발에 채운다. 1~2㎝ 살포시 쌓인 눈이 아이젠 없이는 오르기 어려웠다.
1시간만에 남매탑에 도착했다.
등산로 입구부터 남매탑까지는 평균경사도 17%의 완만한 코스였다면 지금부터 상불봉까지는 경사도 25%가량의 경사길이 이어진다.
3㎞를 걸어온 지점에서 앞으로 상불봉까지 남은 거리는 0.5㎞.
예상컨대 일출까지 30분정도 남은 상황에서 정상에 제때에 도착할 수 있을지 판단 서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걸음은 빨라졌고 숨은 가빠왔다. 피크로 눈 덮인 등산로를 찍어 몸을 끌어당기며 발 앞으로 내딛는 과정이, 들숨과 날숨처럼 반복됐다.
사위는 아직 어두워 나무는 불에 그을린 것처럼 검게만 보이는데 소복한 하얀 눈이 극한 대비를 이뤘다.
이곳에 생명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고독감과 쓸쓸함 그러면서 살아 있다는 안존감이 느껴지면서 금성에 가본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봄과 가을 산 보다 겨울 산이 재미있는 것도 마치 다른 세계를 걷는 느낌 때문인데 겨울 새벽 산행은 더욱 고독했다.
숨을 헐떡이며 반복적인 몸놀림을 하는 동안 일, 회사, 사회관계 등의 고민은 잊힌 듯 기억되지 않는다.
동학사와 은선폭포를 거쳐 관음봉에 도착하는 동학사 1코스가 4.4㎞ 거리에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것과 비교해 오늘은 짧은 코스를 걸은 셈이다.
해는 금방이라도 모습을 드러낼 것처럼 사위를 밝혔다.
붉다 못해 은빛으로도 여겨지는 태양이 조금씩 올라오면서 벌겋게 물든 하늘이 구름 없는 창공에서 노을졌다.
매일 보는 태양이지만 이날 일출은 솥에서 갓 나온 찐빵처럼 아니면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처럼 해가 뜨기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해가 뜨는 이 순간을 위해 산이 있고 구름이 있고 파란 창공이 있다는 듯이 일출 순간순간에 모습이 출렁였다.
부쩍 힘들었던 올 한 해를 생각해본다.
사회생활 10년을 맞이하는데 앞으로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주위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닭띠의 해 태어나 닭의 해를 맞은 나에게 계룡산이 좋은 기운을 주기를 바라는 세속적 바람도 일출 앞에서 해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건너편 관음봉까지 이어지는 자연선릉이 눈에 들어온다.
산의 능선이 마치 성벽모양과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내가 보기엔 능선의 모습은 오히려 톱니 모양의 닭 볏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근육 같기도 했고 나이든 노부의 주름 같기도 했다.
전경을 뒤로하고 하산길에 오른다. 하산은 갑사 방향으로 정했다. 계룡산의 남쪽에서 올라와 북쪽으로 하산하는 셈인데 갑사까지 가는 내리막에서 계곡과 폭포를 감상하는 기대 못 한 감격을 누렸다.
정비된 등산로지만, 계곡과 함께 걷을 수 있는 풍경 좋은 산책길이 갑사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도착한 갑사는 또다른 시간여행이었다.
갑사 표충원은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해 활약한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영규대사는 갑사에서 승군을 일으켜 승려 700명을 엄격히 선발해 왜구에 맞서 싸웠고 “죽게 되면 죽는 것이거늘 어찌 홀로 살겠다고하겠는가”라며 죽음을 감수했다.
표충원 앞에서 묵념을 올리는 것으로 이날 일출 등산을 마무리하고 택시를 이용해 동학사로 돌아왔다.
글·사진=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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