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일 년처럼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여름엔 오후 8시가 다되도록 낮 기운이 펄떡이더니 동지가 다가오면서 오후 5시반이면 저녁이라는 주홍빛 멜랑콜리가 등을 감싼다.
태양이 아침을 부르며 떠오르거나 하루를 마감하며 저물 때, 햇살의 황금빛과 어둑한 하늘의 짙은 파랑이 어우러지는 매직아워를 만난다. 낮과 밤의 중간에 하늘이 만들어낸 마법같은 시간은 바라보는 사람 모두에게 남부럽지 않은 순간을 선물한다. 하루 1시간쯤 될까 싶은 이 낭만은 흘러가는 것들을 기억하려는 사람에게 공평하다.
전주 한옥마을에는 골목마다 오랜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1911년 말에 전주천변 근처 성곽이 철거되고, 일본인들이 상권 중심지로 진출하면서 그에 대한 반발로 1930년 무렵부터 한국인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만들기 시작한 한옥마을은, 현재 한옥 605여채와 일반 건물 171개가 자리한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예종의 탯줄을 묻은 태실 등을 모신 경기전,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전시가 이뤄지는 교동아트미술관, 구들방에서 하룻밤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한옥생활체험관, 전통한지원이나 술박물관 등 구석구석 누비며 체험하다보면 겨울하늘은 금새 어둑해진다. 추위를 피해 사람들이 하나둘 기와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나니 인파에 가려져 있던 기왓장과 담벼락, 대들보, 등불이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보이지 않던 걸 보이게 해주는 다른 의미의 매직 아워다.
은은한 밤기운을 타고 전동성당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이국적인 모양이지만 짙은 갈색의 벽에서 한옥과 비슷한 온도가 느껴지는 건, 성당이 100년 넘게 이 곳에 자리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전동성당은 호남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전인 1914년 세워졌다. 터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곳으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와 '한국 최초 순교터' 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낮과 밤이 맞물려 머무는 애틋한 매직아워처럼 한옥마을의 저녁 너머엔 옛스러움과 현대의 즐거움이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한 해를 하루에 빗대자면 자정에 가까운 오늘. 떠나려는 올해를 쓰다듬고 다가올 새해에 설레여 할 수 있는 마법같은 시간이 지금 곁에 와있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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