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은 치열하게 달려온 대한민국의 역사가 기록된 현장이다.
서울과 대전현충원에 안장되거나 위패가 모셔진 30만여명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존립에 헌신하고 목숨까지도 헌사한 이들이다.
묘역 안장이 완료돼 봉안만 가능한 서울현충원과 달리 대전현충원은 앞으로 국민통합과 국가 체험시설로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국립대전현충원은 군인 등의 특수신분 외에도 사고현장에서 타인의 목숨을 구조하거나 국가의 명예를 의롭게 지킨 이들도 안장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통합장소로 발전하고 있다.
먼저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김용제 선생은 1919년 3월 1일 탑동 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이 있은 이래로 서울 및 전국 각지로 독립운동이 확산되자 이에 호응해 4월 7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長谷面)에서 5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벌이고 면사무소로 시위행진을 한 대표적 독립운동 애국지사다.
마찬가지로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라운규 선생은 항일전선의 대열에 적극 투신했고, 출옥 후 영화계로 진출해 윤봉춘과 더불어 한국의 영화예술을 개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리랑' 등 주로 민족적 성향이 강한 영화를 제작함으로써 일제하 항일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공헌했다.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 257호에 안장돼 추모하고 있다.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대회에 참가해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최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한 손기정 선생이 잠들어 있으며,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날 노래를 지은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도 대전현충원의 품안에서 영면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보건기구(WHO)사무총장으로 전 세계 질병퇴치 전선 사령탑을 맡아 활동하다 장렬하게 순직한 이종욱 선생과 2010년 천안함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목숨을 잃은 한주호 준위 그리고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도발 등 서해교전의 전사 해군 55인이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국립현충원은 여전히 20인 이상 단체 관람객에 한해 현충원 묘역을 탐방하는 투어를 제공하고 있으며, 해설사의 인솔투어가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이때문에 그동안 가꿔온 현충원을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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