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거나 모르겠다는 취지 답변만
“아는 게 뭐가 있습니까?”
6일 오후 국회 본청 245호. ‘최순실 국정 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위원인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쏘아붙였다.
질의 시간 7분이 다되도록 이 부회장이 박 의원의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세한 부분은 모르겠다”고 대답한 결과였다.
이 부회장은 박 의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제가 부족한 게 많아서 정말 죄송하다”고 다시 사과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이 부회장의 오전 청문회 답변을 요약하면 ‘정확한 숫자, 날짜가 기억나지 않는다’, ‘부족한 게 많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날 ‘최순실 국정 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장에는 재벌 총수 8명이 증인석에 나란히 앉았다. 대기업 총수들이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것은 1988년 ‘5공비리 청문회’ 이후 28년만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최순실·정유라 지원, 청와대 압력 등 국민들의 궁금증이 폭발직전이었던 만큼 청문회에는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은 속 시원한 말 한마디 내뱉지 않았다. 대신 입이라도 맞춘 듯 “잘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새누리당 소속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이 개회사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잘못한 점이 있다면 국민 앞에 솔직히 사과함으로써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허사였다.
질의에 나선 국조특위 위원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날리며 총수들을 압박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대가성 여부와 최순실씨 일가에 대한 지원 과정 등 전방위적인 질문을 퍼부었다.
이에 총수들은 “사실과 다르다”, “대가성이 없었다”며 적극 부인하다가도 곤란한 질문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 부회장은 계속되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훈련 지원 의혹에 대해 “당시 정씨 존재를 알지 못했고, 지원 결정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답변만 내놓았다.
위원들이 최순실씨의 존재를 인지한 시점에 대해 집중 추궁했지만 이 부회장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죄송하다”고 답할 뿐이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여러 불미스런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실망감 안겨드려 죄송하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도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관련 질문에 “제가 결정한 게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였고, 최태원 SK 회장 역시 펜싱·테니스 관련 출연금 의혹에 대해 “제 결정이 아니었다”고 답변했다.
물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요청에 따라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났다고 증언하기도 했지만 이미 언론에서 다뤄진 내용이었다.
청문회 도중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총수가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요청했지만 총수들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주저하던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홀로 손을 들자 “당신은 재벌 아니잖아”라는 안 의원의 핀잔이 돌아왔다. ‘재벌도 공범’이라는 촛불은 이번 주 더 거세게 타오를 것으로 보인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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