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
자유롭게 자신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자유학기제의 도입 등 교육은 새로운 흐름을 타고 있다. 그동안의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개인의 자아발견과 실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참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다만, 개인의 꿈과 끼를 키우는 일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사는 삶을 가꾸는 '민주시민교육' 또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여 '자주적인 능력을 갖춘 민주시민'을 기르고자 함을 또렷이 밝혀 놓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교육이 과연 민주시민을 기르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 2015년 전국 초·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국제성취도평가협의회(IEA)에서 실시한 '시민성 및 시민교육 국제비교조사(ICCS)'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은 사회참여 역량이 낮은 편이며 이론과 실천의 불균형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굳이 이러한 연구를 들지 않더라도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과 이에 따른 학생들의 비극적 희생은 우리가 교육을 통해 어떤 사람들을 키우고 있었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한다. 민주시민교육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입시중심 경쟁교육이다. 자유학기제, 절대평가, 학생부종합전형, 역량중심 교육과정 등 새로운 교육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우리 교육은 입시중심 경쟁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경쟁교육 속에서 민주주의의 밑바탕인 존중과 배려, 참여와 소통의 공동체성은 숨쉬기 어렵다. 수십 년 이어온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 그나마 학교를 민주적 공동체로 바꾸고 학생 중심, 배움 중심의 교육을 실현하려는 학교 혁신의 물결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어 희망을 갖게 한다.
민주시민교육의 출발점은 학생을 온전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보는 것이다. 학생을 가르침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교복 입은 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법 어디에도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학생들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제한을 받아 왔기에 더욱 분명하게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몇몇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학생들도 민주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오롯이 보장받아야 한다.
학교민주주의를 실현하고 학생의 사회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연습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 교사, 학부모가 어우러진 하나의 사회로 그 일원인 학생도 주인으로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학생은 지역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투표와 같은 참정권이 보장되어 있지 못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지자체나 교육청에서 학생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실질적인 것을 배우게 해야 한다.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노동인권교육과 노사관계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노측과 사측으로 나누어 노사 협상의 과정을 실제로 연습해 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권리 주체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시민의 권리와 이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을 배우고 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최저 임금이 무엇인지 노동기본권이 무엇인지, 부당한 대우에 맞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현실에 눈뜰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의 가장 훌륭한 배움터는 민주사회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건강하지 못하다. 최근의 국정 혼란 사태,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양성을 해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등 학생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작 희망의 불빛은 당당히 광장에 나선 학생들의 때 묻지 않은 눈빛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부실한 교육과 퇴행하는 민주주의 속에서도 스스로 깨치고 나온 그들에게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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