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않으면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걸 알려주는 공간들이 있다. 폐광된 삼척탄좌 시설을 문화예술단지로 되살린 삼탄 아트마인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으며, 국내 최초 무연탄 선탄시설인 태백 철암역두 앞 가게들은 '철암탄광역사촌'으로 과거의 영광을 여전히 품고 있다. 본래 지어진 목적을 잃었다고 허물어 버렸다면 역사도, 오늘도 없는 일들이다.
2013년, 대전에서 가까운 완주군 삼례읍에 삼례문화예술촌이 탄생했다. 1920년대 지어진 양곡창고였던 이 곳은 2010년 양곡을 보관하지 않게 됐지만 완주군이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조성, 박물관, 갤러리, 공방으로 탈바꿈했다. 창고 모양 그대로, 곡식 대신 문화와 예술이 차곡차곡 맛있게 쌓여가고 있다.
문화예술촌의 입구에 선 커다란 맹꽁이 조형물이 손을 흔들고 있다. 맹꽁이는 마당 곳곳에서도 볼 수 있는데, 창고가 들어서기 전 읍내와 만경강을 잇는 습지였던 이 곳에는 맹꽁이가 많이 서식했다고 한다. 땅을 단단히 만들어 창고를 짓고, 수많은 이들의 발이 닿게 되면서 살 곳을 빼앗긴 맹꽁이를 위로하기 위한 조형물이다.
책 박물관에서는 철수와 영희가 그려진 옛 교과서를 볼 수 있다. 전시장 한켠을 가득채운 송광용 만화일기 40년도 흥미롭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만화가를 꿈꿔온 고 송광용씨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리고 쓴 일기장 수십권이 전시돼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시절이 지나면 외면했을 일기를 계속 써온 꿋꿋함이 경이롭다. 옛 그림체에 실려 종이와 잉크 냄새가 고소하게 퍼지는 듯하다.
VM아트미술관에는 식량의 의미를 재해석한 '2016 Asia and rice-쌀, 문명을 넘어 문화로' 전시가 열렸다. 한국, 중국과 일본 등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국가의 작가 50여명이 참여했다. 먹을 것을 구하느라 지친 아버지와 아들을 위로해주는 달빛, 쌀포대를 입고 횃불을 든 고 백남기 농부의 모습, 모든 쌀에 대한 투쟁을 대변하는 듯한 전봉준 그림이 인상적이다. 식탁 위에 놓인 빈 접시에 반찬 사진이 비춰지고, 맞은편에는 '삼시세끼' 방송이 재생되고 있는 설치미술도 흥미롭다.
수탈의 아픔을 비워낸 양곡창고엔 이제 많은 이들의 추억이 여물고 있다. 입소문 타고 찾은 관광객이 3년간 12만명.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지역문화대표브랜드에서 군 단위 최초로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도 야문 결실일테다.
▲가는길=서대전역에서 삼례역까지 가는 기차가 하루 6차례 운행된다. 1시간 12분 정도 소요된다. 역에서 예술촌까지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먹거리=2㎞ 거리에 비비정 농가 레스토랑이 있다. 버섯전골·홍어탕·불고기 주물럭과 기본 반찬이 맛깔스럽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