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서울 토이키노 박물관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 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라고 노래했던 '서울, 이곳은' 이라는 곡이 있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태어난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동경하며 상경한다. 눈감으면 코베어간다던 말이 있는걸 보면 서울에서 산다는 건 큰 배짱이 필요했나보다. 대한민국 수도에 발을 디딘 누군가는 악착같이 서울살이를 택했을 테고, 또 다른 사람은 소박했던 유년을 눈물로 그리워하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서울 덕수궁과 광화문 근처를 따라 걷는 길에는 각국 대사관과 공관들, 오래된 가게, 그리고 신문사들이 모여있다. 대형 관광버스와 버스가 쉴 새 없이 달리는 대로변이 소란스러운가 싶다가도 골목 하나만 들어서면 한적함으로 가득하다. 카페에선 커피냄새가 그윽하고, 오래된 건물 벽에는 빗물이 흘러 얼룩이 졌다. 가게 앞엔 의자와 화분들이 나른하게 놓여있다. 점잖은 길이다. 어린 한 철을 보냈을 어른의 냄새가 진하다.
서울 역사박물관, 경희궁의 맞은편에는 경향신문사가 있다. 그 안의 기자들이 어수선한 현실을 매만지고 있을 요즘, 건물 2층의 토이키노 박물관을 찾았다. 장난감의 Toy와 영화의 Kino를 합성해 이름지은 이 곳에는 오래된 장난감과 캐릭터 피규어들이 모여 있다. 바깥의 서울 옛 길이 나이를 먹었다면 이 안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어른이 되어 굳세게 견뎌야 살 수 있을 것 같은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의 유년시절을 기억하는 장난감들이 어깨를 다독인다.
입구에 들어서면 팀 버튼의 영화 '크리스마스 악몽'의 주인공 잭이 호박 위에 앉아 손을 내민다. 박물관은 1관과 2관으로 나눠져 있는데 1관은 디즈니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국내 고전 장난감, 액션 피규어, 다양한 애니메이션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고 2관은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같은 영화속 캐릭터와 스포츠 선수 피규어, 영화 포스터를 볼 수 있다. 올해 마흔다섯살의 손원경 대표가 30여년에 걸쳐 89가지, 40만여개의 장난감들을 모았다. 실제 전시되어 관람객이 볼 수 있는 것은 5만여 점이다.
커튼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 극장처럼 연출한 칸칸마다 미키마우스가 늘어섰다. 자유의 여신상이 된 미키마우스, 탐험가 옷을 입은 미키. 1928년 유성영화에 처음 등장해 1937년부터 3편의 장편만화영화와 120편의 만화영화의 주인공이었으니 수백 가지 버전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비교적 최근 개봉했던 영화 말레피센트의 마녀도, 스펀지밥, 심슨가족도 다양한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고 루니툰, 백설공주, 알라딘 등 예전 2D 만화 속 주인공들은 3D 피규어로 옹기종기 모였다. 푸우와 티거 탈을 쓰고 커플사진을 찍거나, 다스베이더 가면으로 스타워즈의 한 장면을 연출할 수 도 있다.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을 지나 다소 어두운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인디아나 존스, 헬보이 등 정교하게 만들어진 피규어가 모여있다. 매트릭스의 네오는 한껏 포즈를 취했다. 빈티지한 코믹스 액자 앞에 배트맨 흉상은 비장한 표정이다. 복도에 걸린 장난감 패턴 이미지도 매력적이다.
햇살이 쏟아지는 마지막 전시실은 울트라맨과 아톰 차지다. 천재과학자가 만든 로봇 아톰은 사람들과 다른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지만,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당들과 싸우고 우주로 나가며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해내는 존재다. 지금 여기서라면 도심 속 동심을 구해내는 역할이겠다.
팀 버튼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든 모험을 마친 열아홉살 앨리스는 본래 살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상한 나라의 친구들과 헤어지는 순간, 이 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겠다고 말하는 앨리스에게 “아니, 넌 다 잊게 될거야“라고 친구인 모자장수가 말한다. 어린시절 세상 전부인 것 같았던, 열렬히 좋아했던 장난감을 우리는 많이 잊고 있지 않았을까. 아톰의 커다란 눈망울이 반가웠다고 말을 거는 듯 했다.
▲Tip!=휴관일 없이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6시에 닫는다. 입장료는 성인 1만2000원, 소인 1만원. 종이접기와 캐릭터 그리기 등 단체 체험학습을 포함하면 1만 5000원이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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