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오후 5시께 한 할머니가 내포신도시의 4~6차선 대로를 무단횡단 하다 질주하는 차량에 놀라 중앙선에 멈춰서 있다. 그제야 주위를 살핀 할머니는 다행히 안전하게 횡단을 마쳤다. |
시골길, 도심, 대로 곳곳서 나타나는 노인들…‘보행자 보호운전’정착 시급
홍성군 노인보호구역 확대 방침도 주목
‘부웅’, ‘끽’. 건설 장비용 대형 트럭이 교차로에서 급브레이크로 미처 정차하기도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70대 할머니는 이 차에 치여 숨을 거뒀다.
지난 달 30일 홍성 원도심 속 사거리에서 있었던 사고다.
트럭 바퀴 하나 정도 키 만한 할머니는 이 커다란 차가 자신을 덮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게 분명하다.
일부 목격자들은 오열했고, 한 달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노인들은 항상 주변에서 힘겨운 걸음을 걷고 있었지만,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그들을 신경 쓰거나 배려하지 않았다.
거대한 트럭 운전자는 “할머니를 미처 보지 못 했다”고 했다.
사고 장소는 노인들이 많이 다니는 전통시장 주변에다 복잡한 도심 사거리였지만, 대형 트럭 운전석은 바로 앞도 보지 못할 만큼 높기도 했다.
26일 충남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 1632건 발생한 충남지역 노인(만 65∼99세) 교통사고는 2014년 1893건, 지난해엔 2094건까지 늘었다.
사고 건수와 함께 사망자 수 역시 늘었다. 2013년 154명, 2014년 174명에 이어 지난해엔 176명의 충남지역 노인이 새까만 아스팔트 위에서 생을 마쳤다.
운전자들의 ‘보행자 보호운전’ 생활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주민들과 일선경찰관서 곳곳에서 나온다.
본보가 한 달여 간 취재한 결과 노인들은 도로 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좁은 시골길과 횡단보도는 물론, 도심과 4∼6차선 대로 한복판에서도 길을 건넜다.
일례를 들면 지난 14일 홍성군 홍성읍 소향리 4차선 소향삼거리의 직각 코너길에서는 한 할머니가 무심코 길을 건너려다 포기한 듯 도로 위에 앉아 있었고, 내포신도시의 4∼6차선 도로에서는 노인들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도로를 가로질렀다.
미처 다 건너지 못해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중앙선에 갇힌 노인들도 발견됐다.
추수철 시골에서는 노인들의 도로 위 활동이 더욱 잦았다.
지난 23일 부여와 청양의 2차선 도로는 길가에 비닐포장을 펼치고 햇빛과 바람에 벼를 말리는 노인들로 가득했다.
일상적으로 운행하는 차량들의 통행조차 불안해 보였고 운전자들은 놀라기 일쑤였다.
그러나 노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논산시에 거주하는 장 모(78·여) 할머니는 무단횡단을 하고는 “나는 잘 몰라. 횡단보도가 어디 있어? 빙 돌아가려면 다리가 얼마나 아픈데...”라고 푸념했다.
“사람 나고 차 났지, 차 나고 사람 났냐?”고 화도 내는 장 할머니다.
충남의 한 교통경찰관은 “노인 분들은 도로의 위험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 하거나 깜빡 하시고,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몸도 불편하고 판단력도 젊은 사람들에 비해 늦은 만큼 운전자들이 항시 노인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행자 보호 운전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홍성군은 지난 23일 도로 상의 노인보호구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분석도 내놨다. 노령인구 증가와 노인 활동 영역 증가로 교통사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는 이유다. 내포=유희성 기자 jdyhs@
▲ 지난 21일 오후 홍성 전통시장 주변 2차선 도로에서 여기저기 주차된 차들을 지나 한 할머니가 수레를 밀고 있다. 역시 주차된 차들을 피해 맞은편에서 역주행 하던 차량에 놀란 할머니가 도로를 건너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지난 달 30일 노인 사망사고가 발생한 장소와 멀지 않다.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