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 흔들리는 지각판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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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춘추] 흔들리는 지각판 위에서

  • 승인 2016-10-12 13:04
  • 신문게재 2016-10-13 22면
  • 정일규 한남대 교수정일규 한남대 교수
▲ 정일규 한남대 교수
▲ 정일규 한남대 교수
나라전체가 흔들렸다. 우리가 얇은 지각판위에서 살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사건이었다. 경주 부근에서 발생한 강도 5.8의 지진이 그곳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수도권에 사는 사람까지 심한 진동을 느끼게 한 것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평소 확고하게 믿었던 것이 깨어질 때 쇼크를 입는다. 그간 잘 들어보지 못했던 '활성단층'이라는 용어는 우리나라만큼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렸다. “강도 5.8이 이럴진대 지구의 다른 곳처럼 진도 7이나 8의 지진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되지?”라는 생각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난다. 이 활성단층 부근에 원자력발전소가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불안은 더 고조된다.

우리가 딛고 사는 이 땅이 항상 우리를 안전하게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이 깨어진 것이다.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렇다고 땅을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거의 매일처럼 흔들림을 경험하는 이웃 일본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 안전하게 우리를 지켜준 이 땅에 감사하게 된다.

요즈음은 또 다른 종류의 믿음이 깨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세계사적으로 기록적인 발전을 통하여 단기간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진입한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설마 했던 일들이 줄을 이어 일어난다. 잘 알지도 못했던 소위 '비선조직의 실세'라는 사람이 무슨 요술을 부린 것인지 순식간에 수백억의 돈을 기업으로부터 모아서 재단을 설립했다고 한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에 대해 공중파들이 입을 다물어 버린 일이다. 설마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청와대의 말을 믿을 정도로 우리 언론이 순진한 것일까? 아니면 그 말을 보도지침으로 받들고 알아서 기었던 탓일까? 그동안 여당의 대표가 납득하기 어려운 별로 시답지 않은 이유를 들어 단식을 하는 이야기로 온통 시끄러운 사이에 '미르재단'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꼴뚜기가 뛰면 망둥이가 뛴다고 관제시위동원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잠수를 타던 어버이연합의 사무총장이라는 사람이 동반 단식을 한다는 이야기가 어느 개그코너의 양념처럼 전해져 온다.

이런 일들이 지진 이상으로 이 땅을, 우리가 딛고 있는 삶의 기반을 흔들고 있음을 느낀다. 이것들이 후진국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나, 오래 전 권위주의 시대에나 발생하는 일이라고 여겼던 생각이 틀렸음을 말해주고 있다.

땅이 흔들릴수록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은 더 단단히 연결돼야 한다. 하나의 운명으로 묶여 있음을 믿고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작 땅이 그 이상으로 크게 흔들리는 위기의 순간을 이겨낼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땅이 흔들릴수록 더 격렬하고 높아진 갈등과 증오의 목소리를 듣는다. 무엇이 우리를 묶어줄 수 있을까? 한 편에서는 북핵의 위협 앞에서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드배치'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국정운영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변한다.

나 같은 범인(凡人)이 정답을 알 도리가 없다. 그 복잡한 군사무기의 작동원리, 국제정세와 외교적 상황, 무기체계의 안전성 등에 대해 평소 고민해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사드배치'는 그것이 초래할 우리 미래의 삶을 받치는 언제 흔들릴지 모르는 얇은 지각판처럼 보인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모두 입 닥치고 이제부터 '국론통일'을 외치는 구호로는 흔들리는 땅 위에서 우리를 묶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구호의 장본인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로 묶여질 수 있을까? 그것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변을 깨끗하게 해서 '의리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정치만이 흔들리는 얇은 지각판 위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고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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