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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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

'아수라' 속 부패경찰 한도경役

  • 승인 2016-10-12 12:25
  • 신문게재 2016-10-13 13면
신사답고 아직까지 잘생긴 중견 배우. 배우 정우성을 말할 때 쓰는 수식어는 대체로 그렇다.

그러나 영화 '아수라'의 그는 전혀 달랐다. '비트'의 방황하는 청춘도, 현실감 없게 잘생긴 40대 남자도 아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질감으로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는 부패 경찰 한도경이 되었다. 영화 속 한도경만이 남아, 그는 어딘가 피로하고 거칠어 보였다. 어쨌든 완성된 결과물이 나왔으니 긴장이 풀린 탓일까. 아니면 쉼없이 쏟아지는 인터뷰 탓일까.

마치 한도경이라는 인물에 또 한 번 감정을 이입한 것 같기도 했다.

다음은 배우 정우성과 나눈 일문일답.

-일단 한도경이라는 캐릭터부터 짚고 넘어가자. 사실 어떻게 보면 악인이지만 처량하고 답답하기까지 한 모습들이 있다.

한도경은 보통 영화 속에서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는 덜 된 악인 한 명이다. 그런 악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아수라'다. 나 역시 한도경을 그렇게 만든 시나리오를 보면서 갑갑했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한도경이 40대 중년 남자들을 비롯한 현실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한도경과 박성배 시장 그리고 도경의 후배 문선모. 이 세 사람의 관계 또한 눈길을 끈다. 서로 얽히고 설킨 삼각 브로맨스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들은 각자의 거울이다. 한도경은 박성배처럼 될 수 없지만 그 사람 옆에서 뭔가 쟁취하고 싶었을 거고, 문선모를 보면서는 자기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불안했겠지. 자기 스스로는 얼마나 나쁜지 인식을 잘 못한다. 문선모는 한도경이 이끌어서 악으로 향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경에게는 좀 오지 말았으면 하는 양심의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 같다.

-몇몇 인상 깊은 장면들이 있다. 빗속의 자동차 추격전도 그렇고, 장례식장에서 유리를 씹는 장면 등. 스스로 이 영화의 액션에 대해 평가한다면 어떤가?

자동차 추격전은 도경의 스트레스 폭발이다. 그래서 차도 직접 가져다 충돌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서는 모든 배우들이 모여서 어떤 장면이 좋을까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 아이디어가 좋다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갔다. 유리잔을 씹는 장면은 뒷골목 정서라고 할까, 내 선배 시대의 정서인데 박성배를 도발하는 거다. 박성배는 한도경에게 절대 강자였기 때문에 본인이 가장 남성성을 과시할 수 있는 행위를 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날것의 격한 액션이 많다보니 신체적인 고생이 많았겠다.

손가락이 뒤틀리고, 손뼈에도 금이 가고 그랬다. 사실 물리적 마찰보다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 각 캐릭터들끼리의 충돌이 더 강한 것 같다. 몸부림치는 액션이라고 해야 할까.

-김차인 검사가 상대적 약자인 여성 수사관을 죽이려고 하는 장면을 두고 왜 하필 여성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저는 그들의 관계가 박성배와 한도경의 관계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관계 속의 폭력이라는 것은 상하로 나눠져 있고, 필요하면 삼키고 필요 없으면 뱉게 되는 게 아닌가. 실제로 김차인을 연기한 곽도원은 굉장히 감수성이 짙은 배우다.

-주지훈과 굉장히 편한 선후배 사이가 됐다고 들었다. 평소에 후배들한테 존대를 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주지훈에게는 반말도 거침없이 한다고.

주지훈은 직관적이고 똑똑한 후배다. 사랑스럽다. 사실 그런 것만으로 예뻐할 수는 없는데 주지훈이 현장을 좋아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힘든 시기를 잘 넘어왔구나 싶었다. 어떻게 보면 데뷔하면서 주인공만 했을텐데, 그런 버거운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아니까. 동료로서의 연민이 들더라. 극중 관계가 개인적인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 건 맞다. 사실 주지훈은 캐릭터와 분리시켜서 보기가 힘들다.

-주지훈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끼리 끈끈하게 지낸 걸로 유명하다. 어디에서 그런 저력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김성수 감독님이 판을 그렇게 짠다. 배우들이 모였을 때 이를 악물고 서로 최선을 다하자는 무언의 공감대가 있었다. 치열함 속에서 생성되는 화음이 있고, 그 화음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 그리고 애정으로 아름답게 들리게 된다. 그 안에서 카메라는 마치 무형의 공기처럼 따라 붙는다.

-김성수 감독과는 영화 '비트'에서 만난 후, 거의 20년 만에 다시 작업을 했다. 그 때와 어떤 점이 달라진 게 있나?

당시 김성수 감독님을 좋아했던 이유를 되새겨보면 치열한 현장 때문이었다. 영화 작업이 이렇게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었다. 감독님은 항상 그렇다. 나는 이렇게 썼는데 너는 어떤지, 더 한도경스러운 게 있는지 의견을 물어본다. 배우도 함께 참여해서 작업하는 재미를 주신다. 그런 것들이 좋았다. 지금은 더 열정적으로 변한 것 같다.

-스스로 비중이 많은 영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부담감도 많았겠다. 어느 영화에서든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고충이 있을까?

우린 모두 다 우리 인생의 주인공 아닌가? 영화를 보면 보조 출연하는 분들도 있고, 스태프들도 있고 역할의 분량에 따라 다 다르다. 그렇지만 그 현장을 채우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다. 어느 것 하나 본인의 임무에 충실하지 않으면 완성체가 될 수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는 걸 좋아한다. 저 주인공들의 삶은 어떤지 궁금하다.

-영화 '아수라'가 이 시대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어느 순간부터 시대가 각박하고 삶에 있어 불합리한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 또한 현실적인 비판이 이뤄지고 현실과 맞닿아 있는 영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아수라'는 영화적인 영화지만 현실을 비틀고 그런 시선들에 대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제 40대 중반이다. 배우 정우성이든, 인간 정우성이든 스스로 어떤 식으로 성장하길 바라나?

나라는 열매가 어떤 씨앗을 뿌려서 또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르겠지만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서 인간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작업 안에서도 계속해서 같이 귀 기울이고, 존중하면 좀 더 깊은 표현이 나올 수 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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