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접대문화, 거나한 저녁→간단히 점심
‘결국 시간과 적응의 문제’관망 시선도
대전에 본사를 둔 중견기업의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김모(34) 과장은 이달초 지역 협력업체와의 미팅을 점심식사만으로 간단히 끝냈다.
관례대로라면 퇴근시간에 맞춰 서울에서 내려와 2차, 3차까지 이어지는 거나한 저녁모임을 했겠지만 지난달 28일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
김 과장은 “당초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에 잡혀 있던 미팅이 10월로 미뤄지면서 모임 자체를 해야할 지에 대해 회사 내부적으로 논의까지 했다”며 “청탁금지법 때문에 아예 협력업체와 관계를 끊을 수는 없어 법이 허용하는 기준 내에서 점심식사만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청탁금지법이 시행 10여 일 만에 빠르게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면서 적지 않은 혼란을 낳고 있다. 관가와 기업들은 청탁금지법의 초반 소나기를 피해보자며 몸을 납작 엎드렸고 그 여파로 소비·유통업계는 경기침체 속에 또 다른 결의 불황을 맞는 처지에 놓였다.
청탁금지법의 대표적인 ‘된서리’ 업종으로 꼽히는 골프업계에서는 예약률을 법 시행 전후로 나눌 정도다. 골프의 최대 성수기라는 10월이지만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예약률이 30%가량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역의 한 회원제골프장 관계자는 “당장 전달과 비교해도 예약이 20개팀은 줄었다”며 “법 시행 초기라 지켜봐야겠으나 매출타격은 이미 시작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에이스회원권거래소가 발표하는 ‘골프장회원권 종합지수’는 청탁금지법 시행 전 690대를 맴돌다 이후 680대로 주저앉더니 7일 현재 684.4를 기록했다. 에이스회원권거래소는 전국 116개 골프장이 발행한 회원권 가격으로 지수를 만들어 2005년 1월 1000을 기준으로 등락을 살펴 지수를 발표한다.
기업들은 ‘당분간’ 언론이나 공공기관 등과 최대한 접촉을 자제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워 실천하고 있다. 지역의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당분간이라는 말이 굉장히 모호하지만 내부적으로 외부접촉을 당분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면서 “다행스러운 건 청탁금지법이 전사회적인 이슈여서 그런지 다들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돼 예전처럼 흥청망청하거나 공짜를 바라는 일은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중견규모의 다른 기업 관계자는 “청탁금지법으로 업무를 하는 데 불편함이 따르는 건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지 않겠느냐”며 “그간 관행대로 해온 기관 접대가 줄어 업무에 집중하고 예전보다 개인적인 저녁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 청탁금지법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승현 기자 hey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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