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년 시민들이 훈족의 왕 아틸라(Attila)가 군대를 이끌고 파리로 침입한다는 소식에 도시가 혼란에 빠졌을 때 주느비에브라는 양치기 소녀가 나타나 파리 사람들에게 신의 가호 아래 보호될 것이니 도망치지 말고 도시를 사수할 것을 호소했다.
주느비에브의 계시가 맞았는지 아틸라는 파리를 그대로 놔둔 채 남쪽으로 향했고, 그때부터 파리의 성녀로 추앙받은 그녀의 유골은 생트주느비에브 수도원을 건립해 안치했으며 기독교인 성지순례장소가 됐다.
100여년이 흐른 뒤 루이 15세는 생트주느비에브가 아틸라의 침입으로부터 프랑스를 구한 것처럼 중병을 앓은 자신을 병마로부터 구했다고 믿고 1764년 기존 성당을 개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성당 개축에는 정치적 의도도 담겨 있어 루이 15세는 민심을 얻지 못하고 복잡한 여자관계로 성직자들로 부터 신앙심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문인들의 왕정비판을 받아 왔다.
성당을 개축해 독실한 기독교왕임을 알리고 흔들리는 왕권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담아 생트주느비에브 성당에 혁식적 건축설계를 담았다.
건설을 맡은 수플로는 고대그리스 신전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하늘에 치솟는 듯한 느낌을 주는 주랑현관과 박공지붕을 설계했다.
수플로는 석제와 철제를 함께 사용해 철제골조 위에 석재를 사용해 건축물 견고성 높였고 1만5000톤 무게의 돔 지붕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이는 1749년 왕립교량학교에서 배출한 건설 인재들이 있어 만들 수 있었으며 당시 언론은 돔 천장이 머리위에서 무너지지 않을까 의문을 제기할 정도였다.
시간 경과에 따른 석제 균열과 철제골조물 침식보강을 위한 복구공사 최근까지 진행됐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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