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민심은 멀리 있지 않다

  • 오피니언
  • 중도춘추

[중도춘추]민심은 멀리 있지 않다

  • 승인 2016-08-31 14:00
  • 신문게재 2016-09-01 30면
  • 문재승 대전대 교수문재승 대전대 교수
▲ 문재승 대전대 교수
▲ 문재승 대전대 교수
최근 세종시 고위공무원들의 심각한 소통 부재가 한 언론에 회자되었다. 세종시에 근무하는 중앙부처 공무원들 중 상당수가 최근 한 달 동안 민간인과 단 한 차례도 업무협의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친구나 동창을 비롯한 민간인들과 사적인 접촉조차 거의 없었다는 조사결과에 공무원들도 놀라고 있는 분위기다. 서기관이나 사무관급의 고위 공무원들이 사무실에 박혀 탁상행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조선 9대 임금이었던 성종은 선비 복장으로 경호원 두어 명만 데리고 백성들의 삶을 둘러보는 미행(微行)을 즐겼다고 한다. 미행이란 왕이 평복을 하고 민가를 돌면서 백성의 삶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미행을 통해 효자, 효녀의 일화가 알려지기도 하고, 인재를 발굴하기도 하는 등 많은 미행일화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요즘도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민정시찰, 민생탐방, 민생투어 등의 이름으로 국민들의 삶 가까이 다가가려는 행보를 보이곤 한다. 그러나 임금이 경호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 동행한 채 몰래 백성의 삶을 살펴보고자 했던 미행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기자들이 동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행원들도 대거 따라다닌다. 대통령이나 지방자치 단체장들이 명절이나 선거를 며칠 앞두고 전통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상인들과 악수를 하고, '경기가 좀 어떻습니까?', '힘내시기 바랍니다.'는 등 몇 마디 건네는 모습이 TV뉴스에 방영될 때 전혀 감동을 전해주지 않는다. 이런 형식적인 시찰이나 탐방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이런 뉴스를 접할 때면 학창시절 장학사 검열이 있기 전 학교에서 벌어졌던 한 바탕 소동이 떠오른다. 전교생이 마룻바닥을 광이 나도록 쓸고 닦고, 운동장, 교실, 화단, 창고 등 학교 구석구석 청소를 했다. 필자는 청소를 하면서 학교에 과학실이라는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과학실에서 수업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참관수업 시간에는, 사전에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선생님의 질문에 공부 잘하는 학생이 미리 준비한 답변을 했다. 엉성한 시나리오에 따라 어설픈 배우들이 연기하는 초짜들의 연극을 보는 듯 했다. 얼마 전부터 내년 대권을 노리는 대선주자들의 민생현장 탐방 행보가 언론에 종종 소개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전남 해남을 시작으로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국민들을 만났다고 한다. 탐방 중에 그는 축산 농가에서 소에게 여물을 주고 옥수수 직판장에서 옥수수 포장 작업을 했다. 신안에서는 염전체험도 하고 부안에서는 콤바인을 운전하기도 했단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또한 히말라야를 한 달 간 방문하고, 독도를 찾아 경비대원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들은 각종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행적을 알리며 국민의 삶을 체험하고 민심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감회를 전한다.

이런 현장체험 소식이 전해질 때 각종 포털사이트와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반응이 격렬하다. “어설픈 세상에 몰려 댕기는 보여주기 쌩쑈 프로그램 보다는 똑똑한 정치를 …” “국민을 얕잡아 보는 코스프레” “지겨운 정치쇼 이제 그만” “평소에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다니면 무슨 민생탐방이 필요해?”

대개 냉소적인 댓글이 많다. '서민 코스프레'라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민심을 탐방해야만 알 수 있다면, “(대권주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다는 긍정적 평가도 없지는 않지만 꼭 민생탐방이라는 이벤트를 통해서만 민심을 읽을 수 있을까? 민심이라는 것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일상에서 국민의 삶 가까이 있으면 굳이 의도적으로 탐방을 하지 않더라도 민심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지역에 있는 식당이나 포장마차만 다녀도, 버스나 지하철만 타고 다녀도 시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세종시 고위 공무원들의 절간(?) 행정 뉴스와 대권주자들의 민생탐방 소식을 접하면서 소통의 접점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진정 국민의 삶에 다가가 그들의 애환과 고충에 가슴을 열고 쓴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를 정책에 반영하려 애쓰는 지도자를 기다려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2. 세종시 50대 공직자 잇따라 실신...연말 과로 추정
  3.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4.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5. 천안시의회 김영한 의원, '천안시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임위 통과
  1. [취임 100일 인터뷰] 황창선 대전경찰청장 "대전도 경무관급 서장 필요…신종범죄 강력 대응할 것"
  2. 대전시노인복지관협회 종사자 역량강화 워크숍
  3.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4. [사설] 충남대 '글로컬대 도전 전략' 치밀해야
  5. [사설] 아산만 순환철도, ‘베이밸리 메가시티’ 청신호 켜졌다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