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도일보 두번째 사옥(현 영민빌딩) |
한국전쟁 혼란속 전시 속보판으로 탄생
서울 등 84개 도시에 취재 보급망 마련
해외 진출·초고속 윤전기 도입 '전성기'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미디어의 역할 또한 수많은 변화를 거듭했다.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탄생한 중도일보 역시 시대와 발맞추기 위한 시도에 앞장서며 대전충청 지역의 일간지로 자리하고 있다. 정보전달과 권력 감시라는 언론의 기본적 역할에 더해 지역민에게 다가가고 함께 발전하기 위한 중도일보가 창간 65주년을 맞았다. 지난 시간 지역과 지역민을 위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중도일보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편집자 주>
▲ 1988년 9월 1일 자 속간호 인쇄모습 |
▲1951년 '전시 속보판' 창간호=1951년 8월24일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전시 속보판'으로 중도일보가 세상에 나왔다. 대전시 동구 중동 사옥에서 탄생한 타블로이드 크기의 마분지는 시시각각 변하는 전쟁 상황을 충청민에게 알리는 전령사의 역할을 자처했다. 제호의 '중도'는 '압록강에서 제주도까지 그 중심이며 신도시로 넉넉한 터전을 지닌 대전에 '중도(中都)'를 건설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엄정중립·신속정확·지역사회 개발'을 사시(社是)로 내건 중도일보는 지역의 표적 정론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1955년 4월 대흥동으로 사옥을 이전했고, 3년 뒤인 1958년 5월 중구 선화동 현 교보빌딩 자리에 또 한번 새 둥지를 틀었다. 4면으로 증면한 신문은 정치·경제·사회·문화면을 정하고 고정적으로 관련 소식을 지역민에게 전달했다. 1966년 서울을 비롯한 84개 도시에 취재 보급망을 마련했고, 1969년에는 지역신문으로는 드문 해외지사(일본)까지 발을 넓혔다. 1970년에는 중구 대흥동에 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의 신사옥 경암빌딩을 준공했다. 당시 대전 시내 최고층 건물이었다. 시간당 3만 부를 찍어내는 초고속 윤전기도 도입해 전성기를 누렸다.
▲ 세 번째 사옥(갈마동 현 대전일보) |
유신정권 언론 탄압에도 펜대 꺾지않아
15년 폐간지나 민주화 시대 속간호 선언
전자신문·자매지 등 새변화로 입지 다져
▲유신정권 언론탄압 시련과 극복=1970년 유신독재의 언론통제로 강제폐간의 시련이 찾아왔다. 군부정권에 대한 날카로운 펜을 놓지 않았던 중도일보는 1973년 5월24일 7070번째 신문을 마지막으로 잠시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충남일보'라는 제호로 대전일보와 합병된 채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15년간 이어졌던 시련은 1988년 민주화의 거센 열망과 함께 언론 등록제 시대가 찾아오면서 끝이 났다. 1987년 9월 1일 지령 7071호의 속간호가 세상과 만났다. 중도일보는 속간사를 통해 15년 전의 정신을 계승하고 지역사랑의 줄기를 다시 이을 것을 선언했다.
제자리를 찾아가던 중도일보는 1990년 1월 시간당 12만 부를 찍어내는 고속컬러 오프셋 윤전기를 도입했고 같은 해 충청권 최초로 전자신문을 발행했다. 1991년에는 자매지 '월간화보 중도포커스'를 창간했고, 그해 12월 서구 갈마동 신사옥으로 이전하며 '둔산시대'를 맞이했다. 1992년 10월부터는 6개국 7개 도시에 해외통신원을 파견했다. 1994년 5월엔 16면에서 20면으로 증면했고, 9월부터는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했다. 1996년 12월에는 전면가로쓰기와 한글제호를 도입하며 시대 변화에 나란히 했다. 이듬해 10월 인터넷 신문 '디지털 중도'를 개통해 상용화했다.
경영난으로 그림자가 뒤덮은 시기도 있었다. 앞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기구 개편과 인력 감축을 해야 했고, 2003년 3월에는 휴간의 아픔을 겪었다. 위기는 같은 해 9월 김원식 회장(당시 충청매일 사장)이 중도일보를 인수합병하면서 6개월만에 지령 11520호를 발행함으로써 종식될 수 있었다.
▲ 제1기 독자위원회 창립총회 |
외환 위기후 제2의 창간땐 시스템 혁신
객원기자 선발·SNS '콘텐츠' 확장 시도
9년 연속 지발위 우선지원 대상에 선정
문화예술·체육행사 개최 지역민과 소통
▲제2의 창간과 도약… 언론 환경 변화 속 뚝심=제2창간의 각오로 다시 일어선 중도일보는 신문의 질적 강화와 함께 신문제작 시스템에도 변화를 도모했다. 2003년 오류동 사옥으로 이전한 데 이어 2008년 6월 오류동 현재 사옥으로 옮겼다. 2006년 기사집배신시스템을 구축해 체계적인 기사작성·송고·편집 시스템을 마련했다.
지역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신문으로서의 역할도 이어갔다. 2004년부터 시작한 독자권익위원회는 정기회의를 통해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있다. 지난해에는 '올해의 독자권익위원상'을 신설해 송년회에 시상했다.
객원기자 시스템도 도입해 운영했다. 2009년 1기를 시작으로 객원기자를 선발해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은 중도일보는 2008년을 시작으로 지역신문으로는 유일하게 9년 연속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대상신문사로 선정됐다.
2000대 후반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중도일보 역시 빠르게 적응했다.
활발한 온라인 홈페이지 운영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콘텐츠 확장에 앞장서고 있다. 2016년 1월 뉴미디어국을 신설해 독자 중심의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같은 시기 모바일 기기로 기사 송고 시스템을 구축해 한 발 빠른 기사를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는 체제도 마련했다.
지난해에는 편집국 산하 '글로벌 중도 미디어'팀이 중국 웨이하이신문그룹과 MOU를 체결해 '경제산업발전·문화·스포츠 등 교류와 자원·바이오·관광 인프라 개발'에 손을 맞잡았다.
▲ 첨단 CTP(computer_to_plate) 시스템 도입 |
▲교육 중요성 역설… 문화예술·체육 사업으로 지역민과 소통=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중도일보는 매년 대학입시박람회를 통해 수험생의 선택을 돕고 있다. 또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1일 기자체험을 실시해 현직 기자에게 현장취재와 기사작성을 배워보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중도일보는 또 지역민과의 소통 창구로 다양한 문화예술·체육 사업을 실시한다. 2007년 중도일보 창간 56주년과 대전시티즌 창단 10주년을 기념한 제1회 잇츠대전(It's Daejeon)국제축구대회는 브라질 인터네셔널팀 초청 국제축구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국제축구팀 초청대회를 통해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올해로 10회를 맞은 대회는 지난 6월 벨기에 AFC투비즈팀을 초청해 대전시티즌 김은중 선수의 은퇴경기를 함께했다.
중도일보는 한국미술발전에 공헌한 고 이동훈 선생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동훈미술상 시상식도 2003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매년 지역 원로 예술인과 전도유망한 작가를 각각 선발해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전시회 개최도 주관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열린 제5회 '月花水木 대전달빛걷기대회'도 지역민과 함께하는 자리로 매년 호응을 더하며 개최하고 있다. 보름달이 뜬 천변을 대규모 인파가 걸으며 건강을 증진시키는 행사로 올해는 5000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이밖에도 풋살대회와 마라톤대회 등 지역의 참여로 이뤄지는 다양한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임효인 기자 hyo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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