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스틸컷 |
“저는 그런 유머러스한 부분이 더 있었으면 좋았다고 생각해요. 감독님 스타일이 터널에 갇힌 평범한 영업 대리점 직원 정수가 겪는 고통이나 처절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생존해나가는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했죠. 분위기를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코믹하게 연기를 했어요. 저는 그게 상황의 아이러니함에서 나오는 코미디라고 봐요.”
'터널'의 시나리오에는 지문만 있을 뿐, 대사가 없기도 했다. 하정우는 그 공백에 무엇인가를 채워넣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죠. 시나리오에 대사가 없어요. 그러면 배우 입장에서는 분명히 여기에 뭔가 채워져야 되는 거니까요. 현장에 가서 상황을 보고 뱉어 보겠다고 이야기했어요. 보면서 조율하기로 했고요. 즉각적으로 머리에서 느끼는 생각을 말로 표현했습니다.”
'터널'의 메가폰을 잡은 이는 영화 '끝까지 간다'로 호평 받은 김성훈 감독이다. 하정우는 이미 '끝까지 간다'를 통해 김 감독 특유의 연출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 알게 됐다.
“비극이 강해지려면 코미디가 배치 되어야 해요. 셰익스피어가 그렇죠. 아주 중요한 드라마가 펼쳐지기 전에 강박적으로 코미디를 붙여 놓습니다. 비극을 극대화시키는 정점으로 가기 위해 코미디를 곳곳에 심어 놓는 거죠. 감독님은 그 구조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암살'이나 '아가씨'도 마찬가지고 코미디 연기가 허용된다면 분명히 그런 지점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많이 찾으려고 노력해요.”
하정우는 '터널'의 포인트를 정수의 조난 적응기와 내부 상황과 외부 상황의 대비에서 일어나는 아이러니로 꼽았다. 영화 '마션', '127시간', '33', '캐스트 어웨이', '올 이즈 로스트' 등 극한 상황 속에서 생존을 다룬 영화들은 죄다 독파했다.
“고통받거나 힘든 것보다 정수가 그 안에서 적응해나가는 생존기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나눴죠. 사실 '마션'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거잖아요. 물을 어떻게 나눠 마실까. 케이크를 어떻게 할까. 그러다가 또 개사료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정수는 밝게 적응해 나가는데 밖에서는 점점 포기를 하려는 상황이 대비되는 게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 싶어요. 다양한 재난 영화들에서 나온 기법들을 생각하고, 실제 생존자들의 경우를 따져가면서 현실적인 측면도 생각했죠.”
생각보다 훨씬 디테일한 부분까지 논의가 이뤄졌다. 케이크를 어떤 종류부터 조기축구회 상의에 새길 이름까지, 상대 배우가 없었기 때문에 주변 상황을 표현하는 소품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저는 초코 케이크를 좋아하는데 좀 싫어하는 케이크를 먹는 게 그 상황을 더 재밌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크림 케이크를 선택했고요. 가방은 어두운 곳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촬영 감독님 의견에 따라 밝은 색으로 선택했고, '거미손'이라는 조기축구회 닉네임도 실제 조기축구회에서 많이 쓰는 이름을 조사해서 나온 겁니다. 워셔액을 또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을 했죠. 먹는 건 말이 안되니까 청소를 하자, 이런 식으로. 배우와 주고 받으면서 연기를 할 수가 없으니까 소품이나 설정 하나 하나를 굉장히 많이 준비했어요.”
물론 상대역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누가 뭐래도 하정우와 가장 좋은 호흡을 이뤘던 존재는 함께 조난된 강아지 '탱이'였으니까. 영화에서는 한 마리로 등장하는 이 강아지는 실제로 '곰탱이'와 '밤탱이', 두 마리가 연기했단다. 집에서 프렌치 불독을 키우는 하정우는 이들을 직접 집에 데리고 가서 친해지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드라마 연기를 담당하는 '곰탱이'가 '욕'을 먹는 연기 이후에 하정우를 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하정우는 액션 연기 담당인 '밤탱이'와 기적을 바라며 촬영해야 했다.
노컷뉴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