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됐다. 1910년 8월 29일 한민족이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긴(경술국치)지 35년 만이다.
우린 이날을 ‘광복절’로 부른다. 그리고 국경일로 제정해 매년 기념하고 있다. 이날을 위해 수많은 선열이 피를 흘렸다. 이들이 목숨을 바친 이유는 단 하나,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였다.
올해 8월 15일 광복 71주년을 맞는다. 이날을 맞는 애국지사와 그 후손의 심경은 어떨까.
본보는 11일 그들을 만나 마음 속의 얘기를 들어봤다.
▲ 정완진 애국지사 |
애국지사 정완진(89) 옹은 “광복절이 다가오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는 “광복 당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그날을 ‘생애 최고의 감격’이라고 표현했다.
“1945년 8월 15일에 느낀 감격은 내 생애 최고지. 당시 교사로 근무 중이었는데 교무실에서 일본 임금의 라디오방송을 들었어. 항복한다는 소리더라고. 비로소 왜놈들이 손을 들었구나 싶었지.”
정 옹은 학생비밀결사조직 ‘태극단’에 몸담아 활동했다. 그때 그의 나이 16세, 꽃다운 나이였다. 그는 활동 중 배신자의 밀고로 구치소와 형무소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정상길 애국지사 후손 정선흥 광복회 대전지부장 |
정상길 애국지사의 후손 정선흥(79) 광복회대전지부장도 감회가 남다르다. 그는 정 애국지사의 손자다. 정 애국지사는 상해임시정부 청원애국당 소속으로 충남에서 독립자금을 모으는 총책임자였다.
“광복절이면 할아버지 생각부터 나요. 37살 때까지 할아버지를 모시면서 지켜봤는데 늘 사람은 나라 없이 살 수 없다고 하셨죠. 그러면서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해야 한다고 항상 당부하셨어요.”
정 지부장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겼고, 바른 마음을 좌우명으로 삼고 생을 살아왔다. 충남도의회 4·5·6·7대 의원을 역임한 그는 현재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정신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광복 71주년을 맞는 이들의 생각은 비슷했다. 두 사람 모두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기 위해선 올바른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지부장은 “광복절이 매년 돌아올 때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행사를 하고 나면 다 끝나는 것 같은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의 사상이 후손들에게 이어져야만 한다”며 “어렸을 때부터 알맞은 역사교육이 선행돼야 하고 시민들도 광복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옹은 “젊은 세대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에 광복, 그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그 시대 한민족의 한과 바람은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에 오롯이 담겨있는 만큼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송익준ㆍ김기홍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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