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훌쩍 커버린 아이들, 꼭 한번 만나고파
최근 본사 편집국에 한 노인이 찾아왔다. 검은 바지에 파란 셔츠, 단정한 양복차림이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주저하던 노인은 기자를 붙잡고 조심스레 입을 뗐다. 노인은 사람을 찾고 싶다고 했다.
“40여 년 전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했습니다. 이 친구들을 찾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염치 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노인은 기자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노인은 미안해 하면서도 간절했다. 시간이 더 지나기 전 아이들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단다. 노인의 성함과 연세를 물었다. “박병익, 올해로 여든하나요.”
노인의 기억은 43년 전으로 돌아간다. 1973년 8월 초순 어느 날 노인은 대전 도솔산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막 시작한 때였다. 내동에 접어들자 물가가 나타났다.
10여명의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목욕을 하는 아이들도 보였다. 아낙네 5명은 털썩 주저앉아 옷가지에 빨래방망이를 두들겼다.
8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옷을 훌러덩 벗더니 물로 뛰어 들어갔다. ‘풍덩’ 빠지는 소리에 노인의 마음도 시원해졌다. 아이는 수영실력을 뽐내려는 듯 이리저리 헤엄쳤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몇 번, “살려달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수심이 깊은 곳에 들어갔다가 당황해 물을 먹은 것이었다.
외침에 자갈밭에서 쉬고 있던 한 아이가 거침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아이는 “형이 구해준다”고 외쳤다. 그러나 동생을 구하기에는 체력이 부족했다.
두 형제는 서로 부둥켜 안고 물속에서 허우적 댔고 큰 형을 힘껏 불렀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큰 형도 동생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두 동생이 잡아 끄는 바람에 큰 형도 함께 빠지고 말았다. 삼형제가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사라지기 직전 노인은 물에 뛰어 들어 수영을 했다. 아이들은 두려움에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노인은 잠수해 발버둥치는 삼형제를 물속에서 들어 올려 뭍으로 헤엄쳤다. 숨이 막히고, 아이들의 발길질에 수영이 어려웠지만 참았다.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몇 분 아니 몇 십 분이 지났을까, 노인은 간신히 삼형제를 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은 마신 물을 한참 토하고, 기침했다.
노인도 멀쩡하진 않았다. 삼형제를 구하려다 돌과 부딪혀 발등이 찢어졌다. 노인은 숨을 고르면서 줄줄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삼형제는 노인의 피를 보고 놀라 오솔길로 급히 뛰어갔다. 옷도 입지 않은 채였다. 노인은 아이들이 걱정됐으나 발등의 상처 때문에 쫓아갈 수 없었다. 노인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삼형제 그 아이들에게 어디 사는지, 몇 살인지도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지금은 어른이 되어 결혼도 하고, 자제도 많이 두었겠죠. 꼭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박병익 할아버지 손전화 010-8562-3889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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