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섬으로 공연장비 일일이 옮기는 수고 자처
7월의 서쪽바다는 해무(海霧)로 가득했다. 충남 보령 대천항에서 서북쪽으로 21㎞, 뱃길로 한시간 남짓 걸려 닿은 섬 장고도에도 옅은 안개가 걸려 있었다.
마침 썰물 때였는지 인근의 작은 섬 명장섬까지 걸어갈 수 있는 물길이 열려 있고 저 멀리 빠져나간 바다는 파도소리마저 숨죽인 듯 고요했다.
지난 28일 오후 장고도의 오래된 풍경화같은 적막을 깬 건 섬 한쪽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선율이었다.
섬에서 나고 자란 여덟 살 예은이는 7분 먼저 태어난 언니 예진, 네살 터울 경민 오빠와 함께 청룡초등학교 장고분교에 다닌다.
장고분교는 섬내 유일한 학교다. 큰오빠와 큰언니 모두 장고분교를 졸업하고 대처(大處)로 나갔다.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다.
분홍색 원피스를 똑같이 차려입고 명장섬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뛰어놀던 예은·예진이도 클래식 음악소리를 듣더니 냅다 백사장 밖으로 뛴다.
공연은 이제 시작이었다. 장고도의 백사청송(白沙淸松)에 간이무대가 설치됐고 주민 70여 명은 제각기 편할 대로 앉았다. 이름하여 ‘맥키스오페라 뻔뻔(fun-fun)한 클래식 섬마을 힐링음악회’다.
대전·충청지역 대표소주 O2린을 생산하는 맥키스컴퍼니(회장 조웅래)와 맥키스오페라단(단장 정진옥)이 문화소외지역인 외딴 섬마을을 찾아다니며 주민들과 작은 문화공연을 나누는 자리다.
충남도와 보령시가 맥키스컴퍼니의 문화복지라는 공연취지에 공감해 공동주최로 힘을 보탰다.
공연은 영원한사랑(a love until the end of time), 오페라의유령 등 대중에 익숙한 팝음악과 뮤지컬, 클래식으로 꾸며졌고 맥키스오페라단의 코믹한 마술과 상황극은 한 시간 공연의 감칠맛을 더했다.
예은·예진이 같은 어린 아이들부터 육십 평생 섬을 나가 본적 없다는 동갑내기 용자씨와 근여씨, 종만씨 등 섬의 어른들 표정에서 언뜻언뜻 달뜬 설렘이 느껴졌던 건 명장섬 뒤로 뉘엿뉘엿 지는 붉은 석양 때문이었을까.
100세대 200여 명이 옹기종기 집단부락을 이뤄 살아가는 장고도에서의 공연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정진옥 단장은 “7명 단원들과 25일 외연도를 시작으로 호도(26일), 삽시도(27일)에 이어 오늘 장고도 공연을 마쳤다”며 “무대나 음향 등 시설을 섬에서 섬으로 옮겨 다니는 강행군이었지만 공연에서 마주한 주민들의 행복한 표정만큼은 앞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은 “이번 공연이 외연도에서 원산도까지 섬마을 주민들에게 평소 접하지 못한 클래식 문화공연의 즐거움을 알게 하고 섬 피서객들에겐 특별한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면서 “향후 섬 주민과 학생들을 대전으로 초청해 계족산 황톳길 체험, 공장견학 등을 지원하는 한편 기업의 문화복지 차원에서 충청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는 힐링음악회를 지속적으로 펼쳐가겠다”고 말했다. 문승현 기자 hey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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