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희 안산평생학습도서관 |
▲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다산책방, 2016 |
이 책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엘사가 학교에서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가장 좋아하던 그린피도르 목도리가 찢어진 날 동물원의 담벼락을 넘는다. 엘사의 기억에서 그날이 찢어진 목도리가 아니고 할머니가 동물원에 무단침입을 하고, 경찰서에 잡혀가고, 병원에서 도망친 날로 남도록 하기 위해서. 너무 똑똑해서 친구들에게는 따돌림을 당하고 어른들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했던 주인공은 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깰락말락나라의 여섯 개 왕국을 넘나들며 사랑하고(미아마스), 슬퍼하고(미플로리스), 꿈꾸고(미레바스), 도전하고(미아우다카스), 춤추고(미모바스), 싸운다(미바탈로스).
여섯 개 왕국의 이름에 담긴 비유와 은유가 소설 전편에 흐르고, 판타지 왕국의 등장인물들은 할머니의 편지를 전달하며 현실세계와 이어진다. 할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손녀에게 남긴 과제는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하는 편지들이었다. 둘만이 알 수 있는 암호와 상징으로 전달할 사람을 찾고 그렇게 전달된 모든 편지에는 “미안하다”는 말과 엘사를 부탁하는 당부가 담겨 있다.
한 아파트에서 살며 자기 곁에 숨 쉬던 사람들이 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여섯 왕국의 주인공들로 탈바꿈하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들의 아픔과 과거가 다가오며 소녀는 현실 속에서 사랑과 용서를 배운다.
젊은 시절 의사로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이어온 할머니의 선행은 죽은 후에도 사람들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부대끼며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여섯 번째 나라 '미바탈로스(싸운다)' 위에 새로 새워진 일곱 번째 왕국 '미파르도누스(용서한다)'는 어쩌면 할머니가 남긴 마지막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게는 슈퍼히어로가 있어야 하고 엘사에게는 할머니가 가장 특이한 슈퍼히어로였으며, 현재도 미래에도 엘사는 모든 특이한 아이들의 슈퍼히어로로 남으려고 한다.
평범하지 않지만 한편으론 지극히 평범한 8살이 곧 되려고 하는 엘사를 바라보며 우리가 예전에 가졌던 슈퍼히어로를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다. 간접경험이나 대리만족, 정서적 치유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떠나 훈훈한 소설을 읽는 시간은 훈훈하고, 달달한 소설을 읽는 시간은 달콤하며, 슬픈 소설을 읽는 시간은 카타르시스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소설은 촌철살인의 대사와 행간을 넘나드는 따스함이 있고,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음에도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아듣겠는 희한한 공감이 존재한다.
“완벽하게 사실주의적이지도 않고, 전적으로 가짜라고도 볼 수 없는 이야기가 가장 훌륭한 이야기이다”라는 지문처럼 말이다.
책에도 무게가 있고, 읽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창구에도 크기가 있듯이 내 몫으로 비워진 창구로 조그마하지만 밝은 한줄기 빛이 들어오게 하든, 넓게 퍼지는 안온한 빛이 들어오게 하든 그 선택은 언제나 독자들에게 있다. 모든 단어와 문맥에 의미를 파악하고 뒤에 숨은 뜻까지도 밝혀야 할 것처럼 교육받았던 관성에서 벗어나 그냥 술술 느낌 충만하게 읽어보기에 편한 책으로 권해본다.
이은희 안산평생학습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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