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무안 회산백련지
연은 여름의 인연이다. 봄날을 보낸 식물답게 어른스러운 녹색을 두르고, 빗방울이 겹겹이 모인 연못 위로 둥그렇게 자리 잡고 큰다. 여름의 녹색과 푸른 색을 딛고 해마다 7월이면 꽃을 피우는 연. 지금, 동양에서 가장 넓은 백련 자생지인 무안 회산백련지에는 연꽃들이 피고 지기를 거듭하며 여름의 꿈을 꾸고 있다.
무안으로 가는 길에 비와 인연을 맺었다. 추위마저 느껴지는 날씨에 물안개가 백련지를 감쌌다. 연못에 들어서기 전 산책로를 걸었다. 나무들 사이로 초록빛 연잎으로 가득한 수면이 초원처럼 보였다.
회산백련지는 1933년 일제강점기에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축조한 저수지였다. 단순한 저수지였던 이 곳이 연꽃으로 이름나게 된 건 한 사람의 꿈 때문이었다. 1955년, 인근 덕애마을에 살던 정수동씨는 꿈 속에서 열두 마리 학이 저수지에 내려와 앉는 모습을 보았다. 보통 꿈이 아니라고 생각한 정씨가 다음날 연뿌리 12주를 저수지 가장자리에 심고 정성껏 가꿔 지금의 백련지로 변화하게 됐다. 한 사람이 꾼 단 하룻밤의 꿈에서 수만 명의 발걸음을 부르는 관광지가 피어난 것이다.
진흙 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은 사람의 착한 본성이 나쁜 환경 속에서도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불교의 기본교리로 비유된다. 또, 다른 식물과 다르게 꽃이 피는 동시에 열매를 맺는데 이것도 모든 중생이 태어나면서부터 불성(佛性)을 가지고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을 반영한다. 그래서인지 나무데크를 따라 연들을 바라보며 걷는 건 사찰의 마루를 밟는 기분을 닮았다. 물 위에 떠있는 연잎은 대웅전 천장에 그려진 연꽃을 떠올리게 하고, 광장과 통로의 연 모양 전등은 석가탄신일에 걸리는 연등과 비슷하다. 백련지는 거대한 사찰, 수행의 도량인 셈이다. '순간순간 사랑하고 순간순간 행복하세요, 그 순간이 모여 당신의 인생이 됩니다-혜민스님' 연못을 가로지르는 108출렁다리엔 마음을 다독여 줄 다정한 글귀들도 새겨져 있다.
연 잎 위에 떨어진 빗방울들은 저들끼리 모여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바람부는대로 줄기가 흔들리자 고여있는 빗방울이 찰랑거린다. 잎 위를 간지럽히며 노는 투명한 구슬 같다가 어느 순간에는 흘러내리기 직전에 일렁이는 눈물 같기도 하다. 연잎은 잎 전체에 작은 털이 촘촘하게 돋아나 있어 연못의 물이 직접 묻지 않는 대신 빗방울이 고인다. 맑은 날엔 젖을 일 없이 먼지만 묻다가 비 오는 날이 되어서야 물을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이다. 퍽퍽한 일상을 보내다가 비오는 날 감수성이 깊어지는 도시인처럼, 연꽃은 사람 마음을 많이 닮았다.
고전 심청전에서 심청은 용궁에서 돌아올 때 연꽃 속에 폭 싸여 있었다고 한다. 밤에 꽃잎을 오므렸다가 아침에 다시 피는 연꽃은 그처럼 부활의 의미도 지닌 꽃이다. 백련지를 걸으면서 일상을 잠시 오므려두자. 화려하지 않아도 매일 수줍게 다시 피어나는 꽃처럼 이 여름도 매일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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