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소주호수와 견줄 ‘소제호’ 아름다운 풍광 자랑
1920년대 철도관사 들어서 철도관사촌으로 변모
전통시대부터 근ㆍ현대시대까지 대전역사 한눈에
1950년대 지어진 보급창고, 건축사적 가치 높아
▲ 소제동 철도관사촌(왼쪽)과 철도보급창고(오른쪽). |
현재 동구 소제동에 위치한 철도관사촌 건물은 대부분 7~8등급의 철도관사 건물이다. 1920년대에 지어진 17채와 1939년에 지어진 23채 등 총 40여 채가 남아 있다. 이런 규모는 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가장 큰 규모의 집단 철도관사촌으로 주목된다.
대전시가 지난해 펴낸 ‘대전의 철도문화유산’에 따르면 소제동에는 ‘소제호(蘇堤湖)’라는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다. ‘소제(蘇堤)’는 중국 소주(蘇州)의 빼어난 호수와 견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1920년대 소제호 주변에 철도관사촌이 들어서고 소제호가 매립되면서 소제동의 풍경은 전통시대와는 다르게 변모했다. 대전이 전통시대부터 근ㆍ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모했는지 소제동이 역사적 과정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전역 동쪽에 위치한 소제동 철도관사촌에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지어진 약 40여 채의 철도관사가 밀집해 하나의 마을을 형성했다.
일제강점기의 철도관사촌 중 전국 최대 규모이고, 내부는 많은 부분이 훼손되기도 했으나 외형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일제강점기 대전역 주변에는 남ㆍ북ㆍ동관사촌 등 3곳에 철도관사촌이 자리했다. 이중 191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남ㆍ북 관사촌은 흔적 없이 사라졌으며 현재의 소제동인 동관사촌만 남아 있는 상태다.
소제동 철도관사촌 건물은 일반주택과 사뭇 다른 모습을 취한다. 지붕의 높이가 일반주택보다 훨씬 높은데다 길이도 매우 길다. 어떤 관사 건물은 지붕 중앙을 경계로 양쪽이 서로 다른 재료로 마감돼 있다.
다만, 외부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비해 내부 구조는 많이 바뀌었다. 다다미방을 온돌방으로 바꾸거나 단열벽체로 보강하고 수세식 화장실로 변형 및 증축하는 등 생활환경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소제동에는 6~8등급의 관사들이 분포돼 있으며 이중 1939년에 만들어진 7등급 관사가 주를 이룬다.
이와 함께 대전 철도문화유산의 대표적 건물로 대전역 동광장 주차장 중앙에 있는 철도보급창고를 꼽는다.
목조로 된 1층짜리 낡은 창고건물은 1956년에 조성된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재무과 보급창고(제3호)’로 우리나라 근대시대 창고건물로써 건축ㆍ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 당시의 창고 건물들이 대부분 사라져 거의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 희소성을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 제168호로 지정됐다.
이런 건물 형태와 건축 구조, 내부 공간의 목조 트러스(일종의 빔) 등은 건립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어 1950년대 당시의 우리나라 목조건축기술을 잘 보여준다.
대전 발전의 견인차가 됐던 철도 관련 근대문화유산을 일제강점시대 수탈과 침략의 도구로만 볼 것인가?
이 질문에서 고민이 깊어진다. 우리에게 남겨진 유산을 등한시하는 것은 그 소중한 가치를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권선택 대전시장은 대전의 철도문화유산 책자 발간 때 ‘흔적과 기억의 성찰’이란 제목을 통해 “철도를 비롯한 다양한 근대문화유산들이 식민지라는 부정성 때문에 그 흔적과 기록들을 다른 시대의 유산들보다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러나 이 또한 대전 역사의 한 부분임을 알고 시대의 흔적을 지울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흔적과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 자손들이 미래를 살아가는데 방향표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태구 기자 hebalaky@
▲ 소제동 철도관사촌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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