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호 백제문화원장·대전문화재돌봄사업단장 |
문화재는 조상이 남긴 유산이다.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문화재 관리는 국가의 책무다. 그러나 예산과 인력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복권기금 사업으로 '문화재돌봄사업'을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민간단체에게 보조금을 주고, 위탁관리를 맡기고 있다. 예방적 상시관리, 경미수리 개념은 효과를 보고 있다. 애정과 열정이 강한 비영리단체들이 공모에 의해 선정된다.
우리나라 문화재 분류는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로 나뉜다. 문화재보호법이나 시ㆍ도 조례에 의해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중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비지정문화재로 분류한다. 국가지정문화재나 시ㆍ도지정문화재는 근거를 갖고 보호받고 있지만 비지정문화재는 법적 관리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비지정문화재는 서럽다. 안내판도, 이정표도 없다. 대전시에도 돌봄사업 대상 167개 중 51개가 비지정문화재다. 정려, 비각, 가옥, 우물, 고인돌 등이 있다. 3년째 돌봄사업을 수행하면서 비지정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문화재는 소유자가 관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소유자와 관리자가 같은 경우도 있고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소유자는 개인, 문중, 재단 등 다양하다. 주인 없는 문화재도 있다. 소유자들은 노후하고 쇠락했으나 비용이 많이 들어 보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훼손되거나 방치된 문화재를 수없이 만난다. 속이 상한다. 허물어진 산성, 폐가가 된 고택, 기울어진 문짝, 찢어진 창호, 금이 간 담장, 낙서로 얼룩진 비석 등등 노출된 문화재는 상처투성이다. 심지어는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놓은 계단도 있다. 장마, 눈 등 자연재해도 만만치 않다. 환경 정비에 안간힘을 쓰지만 돌아서고 나면 풀이 덤불로 우거진다. 자원봉사자들이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지만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이 너무 많다. 주민들이 참여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마을 주민들이 나서야 한다. 문화재 주변은 일정 부분 재산권 행사가 제한된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주민들이 문화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
문화재는 원형대로 보존돼야 한다. 훼손되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 산성은 한 번 쌓으면, 영구히 가는가? 그렇지 않다. 수없이 개축이 이루어졌다. 건물도 수없이 중건이 이루어졌다. 전통기법으로 복원해 내는 일, 빠름보다는 천천히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관광에 투자하는 예산에 비해 정작 그 기본이 되는 문화재에 투자되는 예산은 미미하다. 문화재는 발굴, 보존, 활용의 틀을 갖는다. 문화재는 활용돼야 한다. 활용되지 않으면 죽은 문화재다. 자물쇠로 잠가 놓아 출입이 어려운 문화재도 수두룩하다. 문화재는 개방돼야 한다.
활용사업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미흡하다. 문화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문화 복지를 바탕에 깔아야 한다. 문화재를 즐기는 일은 국민 누구에게나 골고루 향유돼야 한다. 여유 있는 자들만의 고급스런 전유물이 아니다. 달빛 기행도 있고, 서원이나 향교 체험 마당도 펼쳐지고 있다. 문화재는 아는 것만큼 보인다. 보이는 것만큼 사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문화재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아까워하고 있다.
비치해 놓은 소화기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문화재는 관심을 먹고 산다. 국민들의 애정이 문화재를 지킨다. 문화재는 경제논리나 재화로 따질 수 없다. 등급을 매겨 차별화할 수 없다. 비지정문화재를 홀대하지 말 일이다. 국보나 보물만이 문화재가 아니다. 비지정문화재도 소중한 문화재다. 비지정문화재도 지정문화재와 같이 지속적인 점검과 정비, 보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활용이 되기를 희망한다. 비지정문화재도 족보를 만들자.
김정호 백제문화원장·대전문화재돌봄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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