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숙 송촌평생학습도서관 사서 |
-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 中
한꺼번에 읽어도 좋은 책이 있는가 하면 아껴놓은 차를 타마시듯 조금씩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법정스님이 쓰신 '버리고 떠나기'는 후자에 속하는 말하듯이 풀어 쓴 주옥같은 산문집이다.
▲ '버리고 떠나기' 법정, 샘터, 2001 |
'버리고 떠나기'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쓴 글을 모은 것으로 1992년에 출판됐다. 스님이 홀연히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오두막에 홀로 기거하시기 시작한 때이다. 이 책에는 눈을 뜰 때마다 새롭게 다가서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비롯해 명예와 편안함을 버리고 혼자서 살아가는 구도자의 청빈한 삶이 잘 드러나 있다. 시종일관 욕심을 버리고 떠나라는 가르침과 사람은 혼자일 때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진실되게 만날 수 있다는 스님의 참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강원도 오두막에서 나무, 새, 바람, 달, 들짐승을 벗 삼아 사는 구도자의 속 깊은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스님의 생애를 잠시 돌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외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책 읽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던 청년은 1954년 겨울 어느 눈 내리던 날 홀연히 집을 나서 머리를 깎고 출가(出家)했다. 사랑하는 이들과 세속적 욕망을 버리는 대신 그는 진리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었다. 글 잘 쓰고 의식 있는 40대 초반의 촉망받는 스님은 “시국 비판이나 하며 글재주만 부리다가는 중노릇 제대로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 불일암(佛日庵)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한 칸 암자에서 혼자 밥 짓고 밭을 매며 17년을 지내면서 '무소유', '산방한담(山房閑談)', '텅 빈 충만' 등 10여 권의 산문집을 펴냈다. 승속(僧俗)의 명예를 과감히 떨쳐 버린 덕분에 사색의 자유와 자연과의 교감을 얻게 된 것이다. 스님이 강원도 산골,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오두막으로 다시 거처를 옮겨 지냈을 때 이런저런 인연으로 산중 암자에 방문객이 늘어나고 글 빚도 지게 되면서 수행에 많은 지장을 받게 되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셨다. 지인들은 물론 몇 안 되는 상좌조차 스님의 거처를 몰랐을 정도로 스님은 깊은 산중에 홀로 은거하시며, 자신만의 수행 공간과 절대 고독의 희열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책 '버리고 떠나기'는 강원도 두메산골로 터를 옮겨 그곳에서의 생활과 사색을 담은 스님의 수필집이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고 오히려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라는 글을 포함해 63편을 가까운 친지에게 편지를 쓰듯 솔직담백하게 풀어냈다. 미련 없이 자신을 떨치고 때가 되면 푸르게 잎을 틔우는 나무를 보라! 찌들고 퇴색해 가는 삶에서 뛰쳐나오려면 그런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법정스님은 이렇게 고요함에서 나를 치료하고 나를 상쇄시키는 비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별밤을 가까이하라, 한낮에 닮아지고 상처받은 우리들의 심성을 별밤은 부드러운 눈짓으로 다스려줄 것이다” 정말로 이 문장에서 밤의 고요함과 그 고요함 속에 은은히 나타내주고 있는 달을 생각할 때 이 문장 자체에서 어떤 고요함과 고독의 힘이 넘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 너무나 감동적이다.
이 시대에 힐링을 말하는 것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명상이다. 스님은 너무나도쉽게 우리가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명상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자신의 신체적인 동작이나 언어습관 그리고 내면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낱낱이 살피고 있을 때 마음은 저절로 안정을 이룬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투명해지는 것이 곧 명상의 세계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비로소 내면을 차분히 다스리는 명상법을 배웠으며, 진정한 사유의 기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김상숙 송촌평생학습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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