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제목을 내걸은 무대에서 지휘자 천경필과 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은 미래의 청사진을 잔잔하지만 도전적으로 펼쳐보였다.
이번 연주회에서 가장 독특한 모습은 바로 합창단의 형식과 레퍼토리 구성이었다. 여성합창, 혼성합창, 연합합창의 세 파트로 나눈 구조는 청소년합창단의 뼈대를 이루는 인프라 역할을 담당했고, 무반주 아카펠라와 다양한 기악반주 형태로 이루어진 음악장르는 앞으로 채워갈 수많은 레퍼토리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었다.
합창단의 형식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여성합창은 여자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구성됐고, 혼성합창은 남자 고등학생과 남녀 대학생으로, 연합합창은 전단원이 출연한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합창단이었다. 모든 무대에 음악적 능력이 대학생보다 떨어질 수 있는 중·고등학생이 섰다는 사실은 기존단원의 반에 해당하는 신입단원을 새로 뽑아 합창단을 조직한 지휘자 천경필의 철학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청소년합창단의 주역이 중·고등학생들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단순한 합창단원이 아닌 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을 통해 미래의 음악계를 이끌고 갈 잠재적인 예술가로 무대에 선 것이다.
아직은 부족하더라도 수많은 장르에 내재된 개성과 음악양식을 배우고 공연해 본 실제 경험을 통해 이들은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한 후 다양한 음악가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회의 소프트웨어는 무엇으로 채워졌는가.
첫 곡은 공연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로 화음의 균형감각이 절묘하게 요구되는 무반주 그레고리오 성가곡이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핵심은 정확한 발음과 맑고 깨끗한 음색이다.
잘 다듬어진 소리를 최적의 상태로 이끌어내는 지휘자의 역량이 이미 첫 곡에서부터 느껴졌다. 성가가 울려퍼지는 순간 관객들은 쉽게 접하기 힘든 숭고한 미의 세계를 맛보기 시작했다.
이어진 혼성합창에서 남성과 여성목소리는 조화로운 음향으로 아트홀을 꽉 채웠다. 클라이막스에서 터져나온 고음 테크닉과 역동적인 음악적 흐름으로 관객들은 한 곡 한 곡 집중하며 음악회에 빠져들었다. 중세 성가, 르네상스 세속가곡, 민요, 가곡 등 장르와 상관없이 들리는 순수한 울림은 이번 음악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단지 곡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 잔향의 여유로움을 미처 못 기다린 관객들의 박수로 온전히 작품을 누릴 수 없었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후반부의 연합합창은 음악회의 제목에 맞는 가족이라는 이름이었다. 배경으로 가족과 관련된 영상과 가사가 등장해 청각과 시각적 효과가 결합함으로써 음악적 감동은 더욱 컸다. 가족이 지닌 익숙한 이미지도 등장했지만 그 이름이 품은 가치와 정서는 충분히 전달됐다. 음악적으로 주목할 부분은 기악반주의 변화였다.
예컨대 피아노와 트리오, 첼로 선율은 가족 개개인이 지닌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수화와 함께한 부모님의 기도, 재즈풍의 가요와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드럼 등, 곡마다 적절히 배치된 기악은 합창의 반주가 아닌 가사의 의미를 표현하는 또 다른 노래였다.
마지막 곡인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히트송을 통해 노래와 동작을 펼치는 음악극에서의 연기능력까지 열정적으로 선보이며 연주회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아마도 취임음악회였기 때문에 긴장도가 평소보다 높았겠지만, 합창단원들의 자연스런 표현력과 지휘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인상적으로 관객들에게 각인됐다.
조명과 무대배경의 기획력, 기악과 성악의 조화는 앞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산되는 시험무대가 될 것이며, 도전정신으로 설정된 합창 형식과 음악적 내용은 지휘자 천경필의 미래지향적인 행보를 가늠케 한다.
이날 선택된 모든 곡에 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의 풍요로운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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