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대전 계족산 용화사 방면 등산로 ‘덕을 품은 길’. 이곳에서 만난 등산 경력 15년의 한 중년 여성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등산객은 지난해 10월 창원 무학산 등산객 살인사건과 지난 29일 서울 수락산에서 60대 여성이 한 남성의 흉기에 찔려 숨진 일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우리 지역은 아니지만 어쨌든 산에서 사람이 죽었잖아요. 괜히 무섭고 신경이 쓰여서인지 예전만큼 산 오르는 게 즐겁지 않아요. 혼자 매일 오르던 계족산도 일주일에 2번 정도 사람들과 같이 가요.”
그는 “조심히 잘 다녀오시라”는 기자의 말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최근 전국 곳곳의 등산로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해 등산객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대부분 등산로가 인적이 드물고 CCTV 같은 방범시설이 부족한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등산로에서 발생한 강력사건은 모두 4건. 서울 수락산과 창원 무학산에서 50대, 60대 여성이 살해됐고 광주 어등산에선 4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60대 남성이 목숨을 잃었다. 서울 도봉산에선 40대 남성이 등산용 도구를 휘둘러 60대 남성에게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사건이 발생한 이들 산은 도심과 가깝고 산세가 험하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때문에 지역 등산객들 사이에선 “우리 동네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기자는 이날 계족산과 구봉산, 오봉산을 찾았다. 모두 높지 않고 능선이 완만하게 연결돼 시민들은 물론, 등산객들이 자주 오르내리는 산들이다. “산행이 불안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등산객 대다수가 “솔직히 불안하다”고 답했다.
각 산의 등산로 초입에서 둘러보니 2~3명씩 짝지어 산행하는 등산객이 많았다. 수락산 살인사건 이후 불안한 마음에 혼자 산에 오르는 등산객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계족산 비래사 등산로에서 만난 A(49·여)씨는 “바람도 쐬고 건강도 챙길 겸 계족산 등산을 자주하는데 살인사건 소식을 접하고 무서워서 혼자는 가지 않는다”며 “오늘도 같은 아파트 사는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왔다”고 말했다.
오봉산 송강동 등산로에서 만난 B(38·여)씨는 “혼자 다니는 게 무섭긴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오르던 산을 찾지 않을 수도 없지 않느냐”며 “요즘엔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나 큰길로 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등산객들이 불안에 떨고 있지만 대전에는 보문산(13대)과 식장산(6대)에만 CCTV가 설치돼 있다. 또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확성기나 호루라기가 비치된 곳도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방범시설의 확충과 산행수칙 준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 관계자는 “산마다 주요 지점에 CCTV를 설치한다면 범행을 시도하려는 의욕을 줄일 수 있고, 사건이 일어날 경우 피해자를 추적·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등산객은 너무 늦거나 이른 시간에는 산에 오르지 말고 혼자보다는 함께 등산하는 게 좋다. 호루라기 같은 호신장비도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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