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랍스터 트랩과 물고기 꼬리>, 1939, 칼더 |
페루의 나스카 지상화는 연 평균 몇 십㎜밖에 비가 내리지 않고, 바람이 적게 불어 극도로 건조한 기후 덕에 오랜 세월 보존될 수 있었다. 이처럼 바람이 없어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 있다면, 반대로 바람이 불어야 그 의미가 살아나는 것도 있다. 바로 칼더의 모빌들이다.
칼더의 원래 직업은 엔지니어였다.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미국을 떠돌다 뉴욕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파리로 건너가 몬드리안, 뒤샹과 교류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1926년 철사와 나무로 동물들을 만들어 <서커스> 연작을 내놓았고, 이를 계기로 1928년 뉴욕에서 철사 조각가로 데뷔했다. 교류한 예술가들 중 특히 몬드리안에 압도되어 1930년에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담아 ‘움직이는 조각(mobile)’을 만들어냈다. 미술 역사상 최초로 단순히 움직임을 암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움직임 자체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그의 모빌은 조각을 받침대와 양감에서 해방시켰다.
칼더는 자신의 모빌을 4차원 드로잉이라 표현하면서 미로나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재해석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조각은 정적이고 2차원적인 그림과 달리 주변 공기의 순환에 따라 윤곽, 공간, 형태, 색채가 달라진다. 그는 어떤 복잡한 이론도 주장하지 않았지만 정교한 균형을 이룬 시스템에서 발생한 예측 불가능한 패턴과 움직임으로 우주의 움직임과 모든 사물 간의 관계를 나타내려고 했다.
▲ <거대한 속도>, 1969, 칼더 |
뉴욕 MoMA 계단에 매달려 있는 <랍스터 트랩과 물고기 꼬리>는 알렉산더 칼더의 가장 초기 모빌 중 하나로, 칼더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빙빙 돌고 비틀리면서 생물과 유사한 형태를 만드는 이 모빌은 생물의 연속적인 움직임을 더욱 활발하게 한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칼더는 아주 미약한 공기의 흐름에도 반응하는 이 작품으로 조각의 모든 전통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칼더는 “미술은 움직이는 세계를 반영하기에 너무 정적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낳은 훌륭한 조각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은 칼더는 195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전람회에서 조각대상을 받았다. 1960년대 이후 대형조각 붐이 일어나면서 그의 작품들은 비행장·미술관·광장 등에 세워졌다. 역동적이면서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인 <거대한 속도> 등의 대형 조각은 직사각형의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당시 건물들과 대비를 이루며 공간에 활기를 불어 넣으며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2013년 7월부터 10월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칼더의 작품을 전시했었다. 직접 가서 본 칼더의 모빌들은 경이감을 느끼기 충분했다. 언뜻 보면 무질서하게 오브제들이 붙어 있는 것만 같지만, 놀랍도록 무게중심이 잘 잡혀 있었다. 칼더는 작가로서 큰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여전히 새로운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2차 대전 동안 부족해진 금속 재료를 대신하여 나무나 청동으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작업을 선보여 예술가로서의 노력과 창의성을 보여주었다.
칼더의 탁월함은 공간, 바람, 공기 등의 자연적 요소와 어우러지면서 조각이 움직이고, 이 움직임 속에 관객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은 지극히 기하학적이면서도 유려하고 아름답다. 또한 공공미술 측면에서의 대중성도 갖추었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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