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터미널은 이른 시간부터 북적였다. 젊은 학생들이 짐이 가득한 가방과 박스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배낭과 등산복으로 무장한 중년 여성 일행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청평터미널에서 춘천이나 쁘띠프랑스 등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데, 대체로 젊은이들이 춘천행, 중년 여성과 커플들이 아침고요수목원행 버스를 탄다.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에서 무엇을 바라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어서, MT를 떠나는 학생들은 수목원 대신 강변처럼 너른 공간과 숙소가 잘 갖춰진 곳을 찾아가고 '지금의 우리'를 간직하고픈 연인과 남는 건 사진이라는 걸 잘 아는 가족, 중년의 관광객은 사진 찍기 좋은 수목원을 찾는다. 장소가 가진 특성이 어울릴 사람을 부르고, 모인 사람들은 다시 그 곳의 분위기를 만든다. 과연, 수목원에서는 입구부터 흐드러진 꽃과 울긋불긋 등산복 무리, 꽃무늬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모여 핀 꽃들은 멀리서 보면 녹색 캔버스에 흩뿌린 물감같아서, 프랑스 화가 쇠라가 그린 점묘화를 닮았다. 점을 하나하나 찍어 묘사한 그림처럼, 자연이 낳아 준 꽃 본래의 색을 사람들이 하나 하나 정성껏 심어 피워낸 풍경이다.
허리를 굽혀 자세히 바라보면 다섯 개, 여덟 개, 제 몸에 맞는 수의 꽃잎을 달고 한 송이로 피었다. 가운데에는 암술대, 수술대, 그 아래엔 씨방을 품고 꽃받침이 무게를 견딘다.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 스스로 고생하고, 심고 키운 사람들의 땀이 양분이 되어 이렇게 예쁘다. 향기까지 맡아보고 나면 한 송이 한 송이가 작은 우주다.
잔디가 곱게 깔린 아침광장 주변에서 튤립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저 멀리 새하얀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동화책 속 한 장면 같은 풍경에 사람들이 감탄하며 셔터를 누른다. 다른 정원에서도 사진 찍는 사람들을 기다려 줘야 하지만 이곳은 유난히 인파가 많았다. 영국식으로 지은 건물과 여러해살이 식물들이 잘 어우러진 'J의 오두막정원'도 인기다.
수목원 한 바퀴를 돌아보는 데 2~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걷는 속도가 비슷한 건지 꽃을 보는 눈이 닮은건지, 수목원에 올 때 같은 버스를 탔던 사람과 또 같은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수목원과 맺은 하루의 만남은 누름꽃 악세사리, 천연비누, 입욕제 등의 기념품으로, 집에서도 느낄 수 있는 더 오랜 인연이 될 수도 있다. 6월에는 아이리스, 7월에는 산수국, 9월에는 들국화 전시회가 꽃처럼 피어날 인연을 기다린다.
▲가는길=대전에서 천안터미널을 거쳐 청평터미널에 도착한 뒤, 30~40분에 한번씩 운행되는 수목원행 버스를 타면 된다.
▲먹거리=수목원 내에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하는 한식당 아침고요에 산채비빔밥, 묵무침, 송이덮밥 등의 메뉴가 있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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