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한복판에 낮게는 3.5m, 높게는 5m 이상 우뚝 서 있는 육교와 사람들이 이곳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대표적인 도시풍경 중 하나였다. 발전한 도시나 산업화의 상징이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발 한발 힘겹게 오르고, 내려가야 하는 귀찮은 존재가 돼 버렸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임산부 등 교통약자들로부터 “보행권을 침해한다”며 손가락질까지 받는다.
일부 사람들은 육교를 오르내리는 불편함에 무단횡단을 강행한다. 이 때문에 육교는 무단횡단을 부추기는 주범으로 몰리기도 한다.
오랜 세월로 낡거나 녹슨 계단이나 손잡이, 난간도 골칫거리가 됐다.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데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사람들은 “굳이 육교를 건널 필요가 있냐”고 사회에 묻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육교가 있던 자리에는 횡단보도가 들어섰고, 사라지지 않은 육교에는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설치됐다.
대전시도 보행자를 위한 교통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보행안전·편의증진 기본계획’을 토대로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갈 길이 멀다.
대전에는 총 48개의 보도육교가 설치돼 있다. 이 중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육교는 12개에 불과하다. 건설된 지 10년 이상 된 육교도 39개에 달하며, 대부분 시설에서 노후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다.
이렇다보니 장애인, 노약자 등 교통약자들은 힘겹게 육교를 오르내리거나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먼 거리의 횡단보도로 돌아가고 있다.
불편함 혹은 귀찮음이 싫어 위험천만한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도 많다. 육교 주변에서 일상사가 된 무단횡단은 큰 사고로 이어졌다.
2010~2012년 월평육교에서 3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같은 기간 중촌육교(사망 2건·중상 4건), 한밭육교(사망 1건·중상 1건), 큰마을육교(사망 2건·중상 4건) 등 12개 육교에서 교통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대전 곳곳의 육교를 둘러봤다. 육교 대부분이 교통약자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안전사고와 무단횡단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문화육교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충남대병원 방면 계단은 손잡이가 끊어진 채 방치되고 있었다.
문화동 주민 임모(74)씨는 “유천동가려면 육교를 건너야 하는데 계단이 많아서 한번 오르내리면 5분은 쉬었다가 다시 걷곤 한다”며 “동네에 노인들이 많이 사는 편인데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1993년에 준공된 월평육교는 계단에 칠한 페인트가 거의 벗겨져 나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무단횡단을 시도하는 보행자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가장 가까운 횡단보도는 육교로부터 240m 거리다.
갈마동 주민 한모(34)씨는 “솔직히 무단횡단하면 시간도 절약하고 힘도 아낄 수 있는데 뭣 하러 육교를 건너냐”며 “육교를 이용하는 동네사람들을 많이 못 봤다”고 말했다.
이범규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산업화시대 차량 중심의 교통정책이 추진되면서 만들어진 육교가 교통약자들의 편리하고 안전한 보행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무단횡단이 잦고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육교에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교통약자들을 위해 엘리베이터 설치나 구조개선 등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 관계자는 “교통약자를 우선하는 정책이 과거에 미비했었기에 오래된 육교 같은 경우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배려한 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일부 육교는 철거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철거와 동시에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나머지 육교에도 엘리베이터 설치 등 교통약자를 위한 환경 개선에도 신경쓰겠다”고 밝혔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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