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남녀 공용화장실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 강남역 인근 상가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한 남성의 ‘묻지마 범죄’에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여성들은 “두려움이 현실로 닥쳤다”며 경악하고 있고, 전문가들은 “남녀 공용화장실 분리 문제를 사회적으로 고민할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남녀 공용화장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호프집이나 노래방, 피시방, 당구장 안은 물론, 이런 시설이 들어선 상가건물 화장실은 남녀 공용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 5평이 안 되는 좁은 공간에 세면대와 남성용 소변기, 남녀 공용 변기가 함께 설치돼 있다. 남녀 사이를 구분해 주는 것은 내부 칸막이나 천으로 된 가림막 뿐이다. 아예 잠금장치가 없거나 쉽게 여닫을 수 있을 정도로 잠금이 허술한 곳도 부지기수다.
공중화장실법 제7조에는 ‘공중화장실은 남녀화장실을 구분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은 업무시설 연면적 3000㎡ 이상, 상가시설 2000㎡ 이상 건물에만 적용된다. 법이 2006년 11월에 개정돼 이전 건축물은 화장실을 분리할 법적 근거도 없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여성들은 불안에 떨며 남녀 공용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몰카범죄나 성추행에 대한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 살인사건까지 일어나 여성들의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직장인 이모(34·여)씨는 “회식이 있거나 친구들과 약속이 있을 때 남녀 공용 화장실을 사용하다 남자들이 불쑥 들어와 민망하거나 크게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불안한 마음에 들어온 남자들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고 불안감을 토로했다.
호프집을 운영하는 성모(37·여)씨도 “건물에 남녀 공용화장실 밖에 없어 이곳을 사용하고 있는데 통로나 멀리서 술 취한 남성들이 큰 목소리를 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좁은 공간, 그것도 화장실에서 남녀가 같이 있다는 게 솔직히 마음이 불편하다”고 털어놨다.
남자들도 남녀 공용화장실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인 이모(29)씨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볼일을 보고 있는데 화장실에 들어오려던 여자가 날 보며 화들짝 놀라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나가 민망한 경우가 많았다”며 “죄지은 것도 아닌데 괜히 죄책감이 들고, 시선이 남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의 인식과 의식을 바꾸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환경적인 요소를 먼저 바꿔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죄의 공간적 분석을 했을 때 노래방이나 술집의 남녀 공용화장실은 범죄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공간 중 하나”라며 “추가적인 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법·조례 개정을 통해 기존에 설치된 남녀 공용화장실도 분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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